연중 제2주일
(이사야49.3.5-6.1코린1.1-3.요한1.29-34)
제 삶에 당신의 지분(持分)이 있습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 29)
5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가 어느 날 배우자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냐며 놀랐다는 말을 듣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았지만 모르는 것이 있는 겁니다. 제 모친도 결혼 50년이 지나서야 어떤 사건을 계기로 당신이 부친을 많이 사랑하는가 보다고 말합니다. 그 사건은 다행히 부친의 임종이 아니라 가출 사건이었습니다. 하여튼 안다는 것, 제대로 된 앎은 쉽지 않나 봅니다. 알면 알수록 사랑이 생기고 사랑이 생기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앎, 그런 진짜 앎 말입니다.
1. 우리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고백하자
요한 세례자는 자신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두 차례나 거듭거듭 밝힙니다. “나도 그분이 누구인지 몰랐다.”(요한 31.33) 사실 요한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어렸을 땐, 요르단강 강가에서 물장구치며 함께 놀았을지도 모릅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은 친척이었고, 성모님은 엘리사벳의 산전 산후를 도울 정도로 두 집안은 왕래가 있었습니다. 그가 ‘몰랐다’라는 말은 이런저런 신상(身上)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참된 정체를 몰랐다는 것이고, 성령이 일러주셔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을 알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는가? 아는 만큼만 산다는데,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살고 있는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비로소 알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남에게서 들은 것, 교리적인 답변을 뇌까려선 힘을 받지 못합니다. 하느님, 성령께서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분께 말미를 드려야 합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도록 계기를 만들고 시간을 내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새해 피정도 하고 순례지를 방문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의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참조)
예수님을 안다면서 잘못을 범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선 나자렛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 자식이고 뭘 해서 먹고살고 학력은 어디까지인지 알고 있는 거죠. 아뿔싸 그런데 그 앎이 예수님을 제대로 아는 데 걸림돌이 되고 맙니다. 지혜로운 가르침과 놀라운 징표를 보면서도 믿지 않습니다. (마르 6,1-6 참조)
열두 사도 중 이스가리웃 유다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사도로 불림을 받았지만 자기 방식을 고집했고 자기 갈 길로 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참된 면모를 보지 못하고 자기식으로 예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 어떤 분으로 아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밝혀야 합니다. 하느님은 아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요한은 주님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그 길을 닦는데, 생을 바쳤습니다.
2. 주님이 내 삶에 관여하도록 하자
하느님의 어린양은 목가적인 풍경의 양이 아닙니다. 도살당하는, 죄를 뒤집어쓰고 제물로 바쳐지는 양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 요한 세례자를 통해서 첫 번째로 전해진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어린양으로 죽으시기에 예수님은 착한 목자가 되시고, 우리의 길이 되시고 구세주가 되십니다.
저 자신, 감히 목자로 처신하려면 먼저 어린양처럼 죽어야 함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당신은 세상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고, 내 죄를 없애기 위해서도 죽으셨습니다. 이제 제 삶에 당신의 지분(持分)이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 제가 아니라 제안에 당신이 산다”라고까지 고백할 수 없을지 몰라도 어떤 삶을 살면 좋을지 말씀해주십시오. 제 삶에 확실히 참견해 주십시오.’
새해에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은혜도 청하고 각오도 좋지만 먼저 내 삶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하겠습니다.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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