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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의 삶

예수님을 따를 때, 부딪히게 되는 3가지 내면적 장벽

 

예수님을 따를 때,

부딪히게 되는 3가지 내면적 장벽

우리가 예수님의 여정을 따를 때, 내면에서 비롯되는 수많은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러한 저항들 중에 3가지 내면적 장벽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물질적 안정에 대한 장벽입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루가 9,57).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 사람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확고한 의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루가 9,58).

이 말씀은 예수님의 여정을 따르는데 선행되어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물질적 안정을 통해 세상에 안주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보금자리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변화하기를 꺼려합니다. 우리는 예전의 안정된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새로운 차원으로 한 걸음 내딛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는 내면적인 바람이나 애착에 대한 장벽입니다.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주십시오'(루가 9,59). 이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바람입니다.

예수의 답변은 확고합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루가 9,60).

이 말씀 속에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인간적 희생이나 일의 선후(先後)에 대한 차원을 넘어서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여정을 바라보는 영적 식별에 대한 문제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여정에는 두 가지 상반된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움직임이란 '예수님의 부재(不在)' - 예수께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삶의 여정에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 죽음은 멀리 떨어져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부터 영원히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죽음과 생명은 반대가 아니라 주님의 영원한 생명 안에서 통합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적인 바람이나 애착으로 인해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완고히 닫을 것인가 아니면 주님 사랑 안에서 확신을 가질 것인가' 하는 선택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개인적인 '나(ego)'에 관한 장벽입니다. '먼저 집에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 주십시오'(루가 9,61).

이것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신의 것에 대한 내면적 저항을 말합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루가 9,62).

예수님의 답변은 일의 추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나만의 것'이 죽어 없어져야 비로소 그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때 외부나 내부에서 오는 어떤 저항이나 장벽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될 것입니다.

- 홍승모 미카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