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수요일
(창세8.6-13.20-22.마르8.22-26)
< 예수님 장탄식의 원인 >
탄식하시는 예수님, 슬퍼하시는 예수님, 서글퍼하시는 예수님, 생각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십니다. ‘탄식(歎息)’한다는 말의 의미는 ‘한탄하여 한숨을 쉬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앞에 벌어진 실망스런 일을 두고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하며 한탄함을 뜻합니다.
예수님 탄식의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대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그릇된 메시아니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충족시켜줄 그들만의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권력과 전지전능함을 지닌 세속적 왕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는 전혀 상반된 메시아이셨지요. 평화의 왕, 순종의 왕, 종들의 종으로서의 겸손한 메시아였습니다.
또 다른 예수님 장탄식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 숱한 예수님의 기적과 치유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또 다른 그 무엇을 기대했습니다. 보다 더 자극적인 것, 보다 더 큰 것, 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그 무엇을 끝도 없이 요구해왔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사적인 욕구를 상시적으로 채워주는 개인 비서, 해결사,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 마술사로 격하시키고 만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맺음 방식 안에서 제대로 된 신앙인들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시험해서 안됩니다. 내게 이득되는 것만 청해서도 안 됩니다. 좋은 것, 달콤한 것만 추구해서도 안 됩니다.
매일의 우리 삶 안에서 수시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모든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노력이 소중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 우리가 희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것들도 다 하느님께서 내게 필요하니 주시겠지, 하는 넓은 사고방식이 중요합니다.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당신을 향한 여정에서 무수히 많은 표징들, 기적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과 하직했지만, 우리 모두는 아직도 하느님 자비의 품 안에서 기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이 좋은 세상, 이 좋은 형제들, 이 좋은 피조물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미사성제를 통해 그 크신 하느님께서 이 작고 비천한 인간 존재 안으로 다시금 들어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표징, 더 큰 기적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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