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 레위 19,1-2.17-18 .1코린 3,16-23. 마태 5,38-48)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
고등학생 때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을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빛의 파면을 자유롭게 담아낸 입체파 화가의 놀라운 작품이라고 선생님께서는 설명하셨고, 이 작품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를 비롯한 친구들은 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장난삼아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아도 ‘피카소’라는 이름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도 말했다.
“내가 발로 그려도 저 정도는 그리겠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으니 이렇게 생각하고 말했던 것입니다. 훌륭한 화가의 그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에게 비현실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우리가 피카소를 만나서 “왜 이 따위로 그렸습니까?”, “나는 도대체 당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라고 따질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잘 모르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면서 그냥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족한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일을 보기에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고통과 시련을 왜 만들어서 사람을 힘들게 하시는지, 왜 내가 청하는 기도는 다 외면받고 있는 것인지, 전지전능하시면 나 하나 부자 만들고 높은 지위에 오르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텐데…. 그래서 계속해서 불평불만입니다.
“왜 이따위로 세상을 끌고 가십니까? 나는 당신의 그 모습이 도대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런 불평불만이 과연 맞을까요? 완벽하지도 않고 전지전능하지도 않기에 우리는 함부로 주님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해주고 계신다는 굳은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깊은 묵상과 기도로 또 그밖에 다양한 방식으로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은 불평불만보다는 감사의 기도를 더 많이 바칩니다. 주님을 아는 자기 수준이 높아져서 주님을 이해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관점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오른뺨을 치면 다른 뺨마저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고,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면 이천 걸음을 가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더 힘든 일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실천이 우리 수준을 높이는 것이 됩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주님도 모욕당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완전한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아직 수준이 낮아서 그렇습니다. 지금 나의 수준은 어떤가요? 완전한 하느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명랑한 미소를 지어 준 것뿐이지만, 그 미소는 밤을 산산이 흩어지게 하고 그날을 살아갈 가치가 있는 날로 만들어 주었다(스콧 피츠제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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