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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 토끼풀을 뽑아 든 아이 >

< 토끼풀을 뽑아 든 아이 >

며칠 전 한 친지의 병문안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주택가 한쪽에 잔디밭이 있었는데 대여섯 살 된 사내아이가 토끼풀을 뽑아 한 손에 가지런히 들고 있었다. 그 아이의 모습이 하도 귀여워 다가가서 물었다. "누구에게 주려고 그러니?" "여자 친구에게 주려고요." 이 말을 듣고 그 애가 너무 기특해서 그 곁에 쭈그리고 앉아 "나도 여자 친구에게 줄 꽃을 꺾어야겠네." 하고 토끼풀을 뽑았다. 한 주먹 뽑아들고 일어서니 내 토끼풀에는 꽃이 없다며 자기가 뽑아 든 꽃에서 세 송이를 내게 건네주었다.

내가 뽑은 토끼풀에는 꽃이 없다고 자기가 뽑은 꽃을 내게 나누어준 그 마음씨도 너무나 착하고 기특했다. 이런 아이들이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곱게 자란다면 이 땅의 미래도 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전 나는 정기 집회에서 '나눔'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진정한 나눔이 무엇이라는 걸 그 애가 몸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나눔이란 이름을 내걸거나 생색을 내지 않고 사소한 일상적인 일로써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다. <중략>

인도의 현자, 비노바 바베는 학교 교육이 아닌 어머니의 믿음에 감화를 받으면서 성장한 사람이다. 어느 날 체격이 건장한 거지에게 적선을 베푼 어머니를 보고 "저런 사람에게 적선하는 것은 게으름만 키워주게 돼요. 받을 자격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그들에게도 좋지 않아요." 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아들아, 우리가 무엇인데 누가 받을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인지를 판단한단 말이냐. 내 집 문전에 찾아오는 사람이면 그가 누구든 다 신처럼 받들고 우리 힘 닿는 대로 베푸는 거란다.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꿀벌이 다른 곤충보다 존중되는 것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남이란 누구인가? 그는 무연한 타인이 아니라 또 다른 나 자신 아니겠는가. 그는 생명의 한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다.

*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