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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곱씹어 깨치기

삶으로 드러나길 바라

 

삶으로 드러나길 바라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의 이름은 ‘청년 공간 바라’입니다.

새로운 소임지에 파견되어 일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어려웠던 일은 이곳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계속 불리게 될 이름이니 심혈을 기울여서 지어야 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성심수녀회 창립자 수녀님의 이름을 따서 ‘소피 바라 센터’라고 지을까 고민도 해 보았습니다. 좀 더 좋은 이름이 없을까 한 달 넘게 고민하던 중, 하느님이 우리 모두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수녀원에서의 긴 시간 안에서 알아들은 것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 공간이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느님이 지어 주시고 바라시는 모습대로 사는 데 도움이 되기를, 또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청년 공간 바라’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청년들과 함께 저의 바람을 나누었습니다.

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이 공간에서 자신들의 바라는 일들을 함께 해 보길 바랍니다.

 

완전히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두 번째로 어려웠던 일은, 어떻게 종교색을 띄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삶을 나누고 신앙을 전수할 것인가였습니다.

저는 현재 청년 3명과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신자인 학생도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습니다. 저는 되도록 대화나 일에서 종교색을 띄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입니다. 때로 우리 삶에서 많은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입체감 없이 색깔 없이 변해버릴 때가 있지요. 단어와 문장에서 오는 오해와 선입견들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심지어 ‘수녀’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어떠한 말들은 그저 뻔한 말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청년 공간 바라에서는 누구든지 해 보고 싶은 일이 생기면 기획서를 써서 가지고 옵니다. 제가 하는 역할은 그들이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기획팀 청년들이 본인들의 고등학생 시절에 함께했던 특수반 친구들에 대한 기획을 가져왔습니다. 성심여자고등학교에는 유채반이라는 특수학급이 있습니다. 여러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특수학급인데요,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는 이 친구들과 함께 통합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친구들이 미술 수업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요. 이 친구들의 그림을 기획팀과 함께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 이거 oo이 그림이네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 이 친구 어떻게 지내요?” “와!! 이거 **이가 그린 거예요? 진짜 잘 그린다. 뭔가 마음이 힐링되는 기분인데요?”

 

익숙한 이름에 반가워하던 그들은 친구들의 근황에 마음 답답해 했습니다.

직장을 구하기도 해서 활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다수 친구는 집에서만 있으며 답답하게 지내고 있기도 하니까요. 며칠이 지났을까, 기획팀은 야심에 찬 프로젝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유채반 졸업생들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고 그 그림으로 여러 상품을 만들어서 일정 수익금은 작가 친구들에게, 다른 수익금으로는 이미 졸업한 친구들이 정기적으로 와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물품들을 만들기 위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디자인부터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고군분투하는 기획팀 청년들을 보면서 무엇이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친구를 위해 자신들의 간절함을 담아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께로 아픈 친구를 내리던 성경 속 인물 4명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전시회 준비가 마무리되어 가던 어느 날, 기획팀 리더가 찾아와 그림과 성경을 매치하여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친구들 그림을 보면 정말 마음에 위로를 받는 느낌을 받거든요. 뭔가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성경 말씀과 매치하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니.. 수녀원에서 하는 곳이라고 꼭 성경을 쓸 필요는 없어. 그냥 그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아니면 뭐 좋은 시 구절을 찾든가.”

“아니요. 성경 구절을 넣고 싶어요.”

“그럼 대략적 주제를 주면 내가 찾아봐 줄게. 넌 신자도 아니고 성경도 읽어 본 적 없지 않아? 내가 수녀니까 내가 할게.”

“아니요. 성경 구절이 좋을 것 같아요. 뭔가 이 친구들의 그림과는 성경이 맞는 것 같아요. 저희가 해 보고 싶어요. 이 김에 성경 한번 읽어 보죠.”

“그래 해 보고 모르겠으면 이야기해. 그때는 내가 찾아줄게.”

 

1주 정도 조용한 시간을 보낸 기획팀은 친구들의 그림과 걸맞은 성경 구절을 매치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성경을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았던 신자가 아닌 청년들이 성경을 여러 부분을 나누어 읽고 구절들을 골라 온 것이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미지 제공 = 청년공간 바라)

만약 제가 성경 구절을 골라 주었다면 이런 걸작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대단히 고리타분한 내용만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성경을 다 읽었다고? 진짜로?”

“뭐 다 읽은 건 아니고요. 집회서, 코헬렛, 시편, 욥기, 다니엘서, 요한 복음, 루카 복음 그 정도? 뭐 몇 개 더 읽었고요. 좋은 말씀 많던데?”

“수녀님 우리 셀프 교리 한 기분이에요!”

(이미지 제공 = 청년공간 바라)

무슨 말이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청년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일들이 제게 하느님을 다시 만나게 해 줍니다.

제 삶을 통해 드러나는 일들이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하느님을 전하는 일이 되길 바라며

말을 더 줄이고 삶으로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 이지현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