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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의 삶

< 왜 그리스도인인가! >

                               <공동선을 열며>

                                            < 왜 그리스도인인가! >

남들이 다 느긋하게 늦잠 자는 일요일 아침.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도 가톨릭 신자들은 열심히 성당에 나갑니다. 내 탓이요, 가슴을 치고 신부님 강론 듣고 복음성가 부르고 성체를 받들고 나면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밀려옵니다. 이 힘들고 험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기독교인들을 향해 무서운 화두를 던졌습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몇 가지 댑니다.

“죄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은 너무도 잔인하다. 어떤 시대이든 종교가 극렬할수록 독단적인 믿음이 깊을수록 잔인성도 커졌고 세상은 더 폭력적이 되었다. 형법의 개선, 전쟁의 감소, 유색인종에 대한 처우개선, 노예제도 완화 등 도덕적 발전이 있을 때마다 교회는 반대의 입장에 섰다. 종교의 기반은 신비, 패배, 죽음 등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면서 러셀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이 세계를 진솔하게 직시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식과 온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죽어버린 과거만 돌아보고 있을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

러셀의 이 글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반드시 꼭 한번은 읽어 볼만한 글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 볼 일입니다.

“나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현세에서의 고통이나 불안, 죽음 그리고 내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가. 당신께서는 오히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하셨으니 ‘나’ 잘되고 ‘나’ 구원받으려는 생각에서라면 기독교인을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러셀의 결론에 동의하셨을 겝니다. 일요일이면 주차정리봉사를 하고 서울시장 시절에는 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까지 했던 독실한 개신교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허름한 식당에서 김나는 뜨거운 순대국을 맛있게 먹으며 서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이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실제 그가 하는 일은 정반대입니다.

얼마 전 시민단체들은 이 정부가 추진하는 법들 중 악법 22가지를 발표했습니다. 우선 부자, 특권층만을 위한 감세법안들입니다. 2006년 기준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계층은 전체 상속인들 중 0.7퍼센트인 2221명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들을 위해 현행 10~50퍼센트인 상속세, 증여세를 6~33퍼센트로 낮추겠다는 겁니다. 공시가격 6억 원 이상 주택에 부과하던 1~3퍼센트 종부세도 9억 원 이상에 0.5~1퍼센트만 부과하겠답니다.

여기다 법인세까지 낮추면 1년에 20조원의 세금을 깎아주겠다는 것인데 이 돈이면 연봉 천만 원짜리 일자리 2백만 개를 만들 수 있으니 이 감세 법안은 이 나라를 하느님께가 아니라 부자들에게 바치는 겁니다. 또 은행법을 바꾸어 재벌들이 은행을 사실상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답니다. 서민들이 한푼 두푼 저축한 돈을 재벌들 뜻대로 쓸 수 있게 하는 곳은 세계 100대 은행 중 4개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겠다고 합니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현행법 시행 후 1년 동안 정규직이 47만 명 늘었고 비정규직 일자리는 25만개가 감소했습니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800만 명이 넘어 정규직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절반에 못 미치는 비정규직에 대해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은 사용자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정치입니다.

또한 의료법 등을 개정해서 병원들이 관광숙박업 등 영리를 추구할 수 있게 하고 순자산액의 4배까지 의료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한답니다. 여기에 민간 의료보험이 급격히 늘어나는 현실을 더하면 의료분야도 철저히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서 서민들은 의료혜택에서마저 소외되는 무서운 결과에 이를 것입니다. 악법 중에는 수도권 규제를 푸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방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모든 부문에서 그 비중이 보잘것없는 터에 수도권집중을 더 심화시킬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는 법안들도 대기 중입니다. 모욕죄를 두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몇 나라 안 되는데 여기에 더해 인터넷상 모욕죄를 신설해 피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중처벌 하겠다고 합니다. 국민들의 정부비판, 견제를 막으려는 반민주적인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에 마스크 쓰고 집회나 시위를 하면 처벌하겠다는 법안에 이르면 우리 사회는 20, 30년 전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국익’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근거로 국정원이 국정 전반에 개입하고 국민들의 휴대전화 감청까지 가능하게 하는 법안들도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인입니까. 살아서 잘 먹고 잘 살고 죽어서 영혼 구원받기 위해서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너무 어렵다 하셨고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가난하셨고 평생 억눌리고 소외되고 약한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종국에는 당신 자신마저 십자가에 내어 주셨으니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스승님 가신 길을 뒤따르기 위함입니다.

- 김형태 / 잡지 <공동선>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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