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죄와 자비 >
복되었도다 에덴의 환경.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고도 부끄럼이 없었으니
몸은 어른이면서도
심성은 천진난만한 갓난아기였네.
그 안에서 사는 온갖 것들
온갖 풍경까지도 모두 천진난만했으니
그때 그곳 그 맑은 아름다움을
오늘날 어찌 상상인들 할 수 있으리오
좋은 일엔 이를 갈며 독을 뿜는 마귀.
나쁜 일만 궁리하는 사탄의 흉계.
에덴의 낙원의 붕괴.
아아, 인류의 원 조상이 눈물흘리며
그 낙원을 쫓겨나는 광경.
그후 이 세상은
선과 악의 피비린나는 싸움터가 되었다.
세상을 다 차지했던 부자 내외가
얼마 살다가 티끌로 돌아가기 위해
이마에 땀흘리며 낟알을 얻어먹었다.
후려치는 흉기 아래 쓰러지는 아벨.
순간 표정이 이지러지는
착한 아벨의
절망.
카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후련했다. 시원했다. 피빛 기쁨을 느꼈다.
과연 죄는 사탄의 솜씨답게
순간 달구나.
죄의 심리의 굴절의 미로.
허나 그 먹물 꼬리가 언제까지나
길게 서산을 넘는다.
카인이 혈육을 죽인 흉악범일수록
하느님은 그를 더욱 측은해하셨다.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그에게 표를 찍어주시니
가이 없어라 하느님의 자비.
풀 길 없어라 하느님의 뜻.
무성하게 가지 뻗는 원죄의 나무.
마침내 하느님께서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신다.
하느님마저도 후회하시니
마귀의 덫이 얼마나 무서운가!
사람들아, 사람들아, 딱한 무리들아,
얼마 안 가서 의인 노아 일가 말곤
모두 물벼락 맞아 죽어버릴 줄도 모르고
어제도 도둑질 오늘도 음행.
내일도 싸움질 모레도 우상숭배.
마음껏 제 욕심만 채우는 태평시절이
영원히 갈 줄 알고 개기름 흐르는 낯으로
왁자지껄 떠드는 하루살이들아.
재미있구나 노아의 방주.
전나무 배, 길이 삼백 자,
너비 오십 자, 높이 삼십자.
아래 칸 가운데 칸 위 칸 삼층에는
의인 노아 가족을 비롯
종마種馬도 종種 호랑이도 종種 독수리
씨 잡초도 씨 배추도 씨 소나무도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모든 족속이
아늑하게 사이좋게 살림을 하니
이것이 바로 작은 우주 겨레일세.
문명의 씨앗일세.
보라, 저 밖, 천지가 온통 물인데도
너희들은 평화롭게 피난하니
바로 의인 노아의 공덕이었네.
하느님께선
참 의인에겐 이토록 큰 상을 주시네.
하느님께서
다시 노아 일가와 계약을 맺으시며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망케 하지 않을 터이니
온 땅에 손을 퍼뜨리라고
땅 위의 모든 것을 지배하라고 하시며
축복을 내리셨다.
이것이 이를테면 제2의 창세기였건만.
아뿔사, 그후의 사람의 역사.
다시 구겨진 자유와 양심의 역사.
사람은 되풀이 죄를 저지르게 마련인가?
사람은 한없이 부족한 존재이기에?
하느님께선 되풀이 용서하시게 마련.
하느님은 무한한 자비이시므로.
여기 시꺼먼 죄가 있다.
여기 무지개빛 죄가 있다.
여기 곰팡내나는 죄가 있다.
여기 피냄새나는 죄가 있다.
죄야, 죄야, 뽐내지 마라.
네가 가히 지옥의 괴수의 수족답긴하지만
사람이 참된 뉘우침으로
너 죄를 겪고 딛고 일어서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 열린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느님의 뜻.
이것이 지존하신 하느님의 자비이시다.
그러니 우리 사람은
죄를 마저 오롯이 바쳐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드리세.
- 성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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