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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

[단독] 양육비 미지급자 처벌, 도망가면 손 쓸 방법 없어

  • [단독] 양육비 미지급자 처벌, 도망가면 손 쓸 방법 없어

유현모(가명)씨의 전 배우자는 양육비 6000여 만 원을 지급하지 않아 형사 고소 당했으나,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는 등 잠적하고 있다. 이에 유씨는 의정부지방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독자제공

2021년 7월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감치명령 결정을 받고도 1년 안에 미지급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형사 처벌할 수 있게 됐지만, 새 법안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사실상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소연(가명)씨는 3월 양육비 290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은 전 배우자를 상대로 개정된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형사 고소했으나, 사건을 접수한 인천 삼산경찰서에서는 한 달도 안 돼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인천가정법원이 감치결정등본을 공시송달해 피의자가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시송달은 진행 중인 사건에서 당사자의 주소 등을 알 수 없어 소송서류를 전달할 수 없을 때 이를 법원에 보관하고 그 취지를 공고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하씨의 전 배우자의 경우, 위장전입으로 인해 소송서류가 전달되지 않아 법원은 2022년 2월 공시송달로 감치명령을 결정했다. 감치결정등본 또한 전 배우자에게 전달되지 않아 공시송달했다. 하씨는 “법원의 판단이 전제돼 있음에도 증거가 없다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거주지가 불분명해 감치결정등본을 전달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공시송달이 불가피한데, 피의자가 위장전입인지조차 피해자가 증명하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체포 영장을 판사가 기각한 사례도 있다. 유현모(가명)씨는 18년 동안의 양육비 6000여만 원을 받지 못해 전 배우자를 경기 양주경찰서에 형사 고소했다. 그러나 유씨의 전 배우자는 경찰 조사에 3번 이상 출석하지 않았고, 이에 검사는 체포영장을 신청했지만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기각됐다. 수사관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역시 ‘양육비 미지급자가 의정부가정법원의 감치명령 결정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계속되는 조사 불응에 경찰은 두 번째로 검찰에 체포영장 신청을 요청했으나, 이번엔 검찰이 기각했다. 유씨는 “양육비를 받기 위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지만, 들려오는 소식들은 절망적”이라며 “도망 다니면 처벌을 피할 수 있는 현실에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에 유씨의 법률대리인 남성욱 변호사(법무법인 진성)는 “어렵게 감치결정 명령을 받아도 공시송달이면 수사기관에서 협조를 하지 않은 상황이 안타깝다”며 “법 개정은 이뤄졌지만,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와 수사기관이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인천 삼산경찰서 관계자는 “혐의가 없다고 해서 수사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검찰에서 검토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민사소송과는 달리 형사소송은 공시송달로 처벌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수사하는 입장에서도 곤란한 면이 있다”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여가부가 “감치명령과 별개로 양육비이행명령 결정 후 형사 처벌 등 제재조치가 가능하도록 양육비이행법 개정 추진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일고 있다. 남 변호사는 “실제 법이 개정될지 미지수일뿐더러 개정된다고 하더라도 법에 대한 해석이 기관마다 다르다면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며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학대로 인정되는 선례가 마련되도록 법원 차원에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도 교회가 운영하는 미혼부모기금위원회의 취지를 언급하며,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미혼부모기금위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생명 존중을 위한 사랑과 봉사 정신을 이어받아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낳아 기르는 미혼부모를 지원하기 위해 2020년 5월 설립됐다.

박 신부는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한부모와 그 자녀는 사회적 약자로서 보호받아야 마땅하지만, 사회적 여건이 그렇지 않아 교회 차원의 미혼부모기금위원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며 “다른 사례를 봐도 법이 바뀐다고 사회가 달라지진 않기 때문에 한부모 가정 개인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의식을 반드시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