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예수님(김수나, 에우프라시아, 한평책빵 대표)
저는 가톨릭 문화에 많이 의존하면서 살았습니다. 햇살에 비치는 이콘, 성모의 밤 행진을 할 때 입었던 핑크색 드레스와 화관, 하얀 미사보를 쓰면 피어나는 거룩한 마음, 응송을 주고받는 기도 소리, 언덕 너머로도 들리던 삼종기도 타종소리, 오르간 소리, 미사 전 침묵과 성체조배실의 포근함까지. 또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매일 미사와 묵상글, 교회 이곳저곳에 넘치던 신앙 강좌와 문화 프로그램, 성지와 성인들의 이야기, 뜨거운 방바닥에 녹아버리기도 했던 장미향이 났던 묵주, 묵주의 기도와 전례 주기는 물론, 이야기로만 들어도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주보를 통해 알게 되었던 정채봉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도.
열거하지 못한 복이 이보다 더 많겠지만, 모든 은총 중에서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저는 고해성사입니다. 교회의 모든 성사는 전부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징이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받았던 하느님의 큰 사랑은 두고두고 가톨릭 신자라는 자긍심의 이유입니다.
말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토해낸 일이 있습니다. 치유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신부님은 알고나 있는 듯 “어릴 때 어떻게 살았니?”라고 물었습니다. 아무 대답도 못 하자 별도 약속을 잡아주었습니다. 성당 1층 교리실에서 면담을 했습니다. 기도를 해주시자 마음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높은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보며 예수님께 떠오르는 일들을 말하라며 신부님은 제 등 뒤에서 계속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신부님의 기도 덕분인지 상처였던 일들이 계속 떠올랐고, 어린 시절의 억울했던 일들로 서러운 눈물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어디 계셨느냐고 신부님은 자신이 겪은 것처럼 원통하게 기도했습니다. 상처 입은 자와 함께하시는 지상의 예수님이었습니다. 신부님의 기도는 계속되었고 억울한 일들을 당할 때 예수님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죄가 상처에서 연유되는 것을 깨닫게 되니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회 상담봉사자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잊지 못할 고해성사 이야기 하나 더 올립니다. 어느 해 8일 피정 마지막 전날 그간의 총고해를 했습니다. 저의 고해를 정성껏 들은 신부님은 해맑은 표정으로 손뼉을 치듯 손을 모아 기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보속은 없어요. 보속은 제가 할 거예요.”
돌아온 탕자 한 명을 기뻐하는 지상의 아버지,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십자가의 예수님이었습니다. 만약 하늘나라에서 영화를 만든다면 손 번쩍 들고 신부님의 표정과 언어를 재연하는 장면을 넣어달라고 외치고 싶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성사를 글쓰기 실력이 없어 잘 전하지 못해 마음 동동 굴립니다.
고해소에 들어가는 일은 은총입니다. 희망의 아침을 맞이하게 합니다. 간혹 비어있는 성당에 앉아 있으면 제 인생을 통해 주신 하느님의 사랑에 고마운 눈물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사제가 지상의 예수님이라는 믿음은 제 인생 여정을 통해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희망을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복음의 기쁨」, 86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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