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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의 삶

양육이냐, 사육이냐…신자를 울타리에 가둔 종교의 결말

양육이냐, 사육이냐…신자를 울타리에 가둔 종교의 결말

픽사베이

#정신과의사인 스캇펙박사는 ‘Life is difficult’라 했다. 마음의 병, 몸의 병, 생활고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짐을 덜고 싶어서 종교를 찾는다. 그런데 기성종교들은 신앙의 짐을 더 지운다. 사는 것도 죽을 지경인데, 사이비종교들은 한술 더떠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겠노라면서 금품을 갈취하고 착취한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아니다. ‘무릇 짐지고 수고하는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역행하는 자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아니다. 짐을 지우는 자들은 컴플렉스덩어리들이고, 착취하는 자들은 사탄의 종들이다.

#사회는 인간을 가축화시켜서는 안된다. 파울로 프레이리의 말이다. 인성은 상관없고,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교육관은 아이들을 가축으로 만든다. 그것도 들개들로 만든다.

학교에서 학폭이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우리 교육이 아이들을 들개떼로 만들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중에 머리좋은 아이들은 손에 권력이란 칼자루를 쥐고, 학교 때의 폭력을 계속한다. 프레이리는 경고한다. 이런 사회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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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의 ‘사주풀이’ 프로그램에서 ‘마녀사냥’ 편을 준비하면서, 중세가톨릭교회의 실체를 보다 깊이 알게 되었다. 마녀사냥을 조장한 자들과 막으려는 사람들 간의 갈등을 조사하다보니 ‘지금의 우리나라와 별다를 게 없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적인 모양새만 바뀌었지 근본문제들은 여전하다는 것을 자료 검색하면서 새삼 느낀다.

종교인들이 건강치 못하면 광신도들에 의해 마녀사냥이 저질러지듯이 시민들이 건강치 못해도 정치적 마녀사냥이 멈추지 않는다.

#사이비교주들을 분석하다보니, 결국 오래전 내린 결론으로 귀착한다. 사목자냐 사육자냐 하는 것이다. 양육이냐 사육이냐 하는 아동양육론은 종교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사육자는 다시 세분화된다. 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사육자가 있다. 사이비교주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착취는 하지 않는데 사고의 획일화로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즉 내사화하려는 사육자들이 다른 부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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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불안과 불안감이 심한 부모가 자식을 애로 만들듯이 불안감이 심한 종교인들은 신자들을 교회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 한다. 지나치게 교회정신을 강조하면 병적인 내사(introjection)가 구조화된 상태가 된다. 일명 방주컴플렉스다.

이런 구조 안에서 안주하면 날개가 퇴화되어 독수리가 닭으로 역진화한다. 주님께서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러 떠나라’ 하셨는데, 우리 안에서 오래 살다보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한다.

아이가 크려면 우리 안에 가두면 안된다. 우리 안에 갇힌 것들은 속이 좁아질 뿐 아니라 공격적이고 잔인해진다. 종교가 역사상 수많은 학살극을 주도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글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