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마음으로 >
< 예수의 마음으로 >
‘나의 길’이라는 물음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듯 보이는 삶의 단편들까지 내 인생에서
참 소중한 부분이었음을 일깨워주는 힘이 있다. 또 그동안 내가 걸어온 길이 스스로 선택
한 길이기도 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어떤 큰 힘에 주도되어 만들어진 길임을 고백
하게 한다. 삶의 순간순간 ‘나의 길’을 인도해주시는 그분께 감사드리며 소박하게 일구어
온 나의 길을 기억에 남는 단상들을 통해 엮어보고 싶다.
성소聖召가 싹트던 시절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매 주일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를 성당에 데리고
나가셨다. 미사가 거행되는 엄숙한 자리에서 가만히 한 시간을 버티자니 몸이 뒤틀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과 장난치다가 어른들한테 쥐어 박히고 혼도
많이 났지만 공짜로 과자를 받는 즐거움이 있었기에 성당 다니는 것이 그리 싫지는 않았
다.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성당 갈 시간에 놀러가자고 꾀는 것이었다. 어머니한테 혼나지 않
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괜찮겠지’하며 산으로 올라가 한참을 놀다가 집에 돌아왔다. 그런
데 한번쯤 봐 줄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마당에 있는 싸리 빗자루를 잡으시더니 마구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날 신나게 두들겨 맞은 다음 집밖으로 쫓겨났다가 어두컴컴할 때
가 되어서야 다시는 ‘땡땡이’치지 않겠다는 약속과 함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머니
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이 길들여져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나보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는 자발적으로 성당에 나갔고, 좀더 ‘의미 있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
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제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고 별 관심 없던 학과공부도 열심
히 하여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꿈 이야기
어머니는 간혹 당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와 관련된 꿈 이야기 중에 두 가지가 기
억에 남는다. 첫 번째 꿈은 내가 태어나기 전에 꾼 태몽이다. 뭐 대단한 꿈인가 싶어 솔깃
했더니, 미역국을 끓여먹는 꿈이었단다. 아들 한 명 더 놓고 싶은 기대와는 달리 또 딸일
것 같은 꿈을 꾸시며 어머니는 무척 섭섭해 하셨다고 한다.
내가 신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는 이 꿈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그게 바로 아들을 하
느님께 봉헌하는 꿈이었구나, 라고 해석하셨다. 두 번째 꿈은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나름
대로 사제성소에 대한 갈등을 겪을 때였다. 혼자서만 고민하다가 내 방에 찾아온 어머니
앞에서 고민을 털어놓으니, ‘맞다’하고 손뼉을 치시며 그 전날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들려주
셨다. 그 꿈인 즉, 어머니가 밭에 나갔는데 새파란 싹 하나가 고랑에 나 있더란다. 그런데
그 싹이 하도 작고 연약해보여서 혹시 누가 밟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밤을 지새웠다
는 이야기였다. 참으로 신기했다. 비록 꿈이지만 어머니께서 나와 똑같은 심정으로 내가
걸어가는 성소의 길을 걸어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나
혼자만의 길이 아님을 느끼게 해 주는 경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를 버티게 할 수 있는
힘이었을지 모르겠다.
부모로부터 받은 심성
아버지, 어머니는 젊을 때부터 계속 농사일만 하셨다. 여느 시골 어르신들이 그러하듯 일
안하고 놀면 병이 날 정도로 농사일이 몸의 일부가 된 듯하다. 덕분에 나에게도 농사일에
대한 추억들이 많다. 한창 바쁠 때는 나도 큰 일꾼이었다. 물론 스스로 일하고 싶어서 했
다기 보다는 마지못해 한 경우가 더 많다. 그런 마음을 아셨는지 아버지는 때로 “밭 한골
메면 오백 원 줄께”하며 즐겁게 일하도록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왜 하필 농사를 지으실
까?”라고 못마땅해 했던 철부지 어린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
다. 그리고 왜 그때 좀더 기쁘게 농사일을 도와드리지 못했을까, 후회할 때가 많다.
부모님은 대농을 해서 떼돈을 벌겠다거나 도시로 진출하겠다는 등등의 큰 욕심 없이, 그
저 자연과 벗하며, 생명을 키우며 유유자적하게 사시는데 만족하셨다. 아버지는 동네에
서 소위 ‘법 없이도 사는 사람’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 형편이 좋지 않은 사람
들이 편안하게 드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 역시 혼자 사는 할머니를 챙겨주는 일이
나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으로
불가에서 수행자들이 화두를 하나씩 가지고 살 듯 사제들도 각자가 마음에 드는 성서구절
을 택하여 종종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다듬는다. 사제가 되면서 나는 어떤 성서 말씀을 택
할까 묵상하다가 ‘이것이다’ 싶은 구절이 눈에 띄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
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2.5).”
사람의 인격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일 것인데 그렇다면 스승이신 예수님은 어떤 마음을 지
니고 사셨을까, 물음을 던지며 해답을 찾아나간다면 사제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비결
이 라 생각하여 택한 성구聖句이다. 사실 예수님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이라 몇 마디로 단
언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처지로 ‘내려오시고’ 사
람들에게 ‘다가가시는’ 마음이라고 본다. 특별히 약하고 어려운 사람들, 그 사회에서 대접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셨고, 인류 전체가 겪고 있는 아픔에 동감하시며 당
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은 사랑이 아니던가.
지금, 내 자리
사제가 된지 벌써 7년째 접어들었다. 농촌에서 자랐고 농촌교구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사
제로 살면서 농민들과 가까이 어울리며 살고 싶은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 똑같은 조
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는 없지만 농사일을 통한 즐거움과 보람, 어려움과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싶다. 또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는 그들의 선택이 참으로 값진 선택임을 몸으
로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은 사회복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교구장 주교님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기
는 자리에 파견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일하려 한다. 어찌 보면 농민들
에 대한 관심과 사회복지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복지 일을 배우고 익히며 농
촌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피는 좋은 기
회라 생각한다. 비단 농민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 곳곳에서 더욱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예수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일에 동참하고자 한다.
- 이형철 / 신부, 안동교구 사회복지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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