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착화된 남북 갈등, 적대감 넘어 혐오의 감정으로 확장
지난 5월 31일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민족화해분과위원회 ‘평화와 화해를 위한 연대 순례단’이 분단으로 끊긴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을 직접 걸어보며 분단의 현실을 체감하고 있다.
6·25 전쟁을 중단하는 정전 협정을 맺은 지도 70년이 됐다. 정전은 말 그대로 종결이 아니라, 전쟁을 잠시 중단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두 세대를 넘어가는 7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한반도의 분단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 됐고, 남북 관계는 풀기 힘든 고착화된 갈등으로 자리 잡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주영 주교)는 20일 ‘정전 70년, 분단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을 주제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혐오와 경쟁 등 일상 깊숙이 파고든 분단의 문화를 바라봤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혐오로 점철된 분단의 흔적
오랜 남북 분단은 남한 사회 안에서 ‘우리끼리’ 혐오를 낳았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발제를 통해 분단을 한국 사회에서 혐오의 감정이 확장되는 주요한 영역으로 주목하며 “분단은 북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 내 사회적 갈등과 적대를 생산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남한은 정전체제가 구축된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음에도 분단의 상황과 맞물려 이념적 대립과 적대적 인식이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며 “남한 사회에서 ‘북한적인 것’은 적대감과 두려움을 넘어 희화화와 혐오의 감정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발달한 기술과 매체는 불안에 기초한 혐오의 감정을 네트워크를 통해 급속하게 확산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충분하다”면서 “문제는 혐오의 감정이 확장되면서 특정 집단을 오염된 것으로 낙인찍고, 사회에서 철저하게 배제하게 되면서 발생한다”며 혐오가 불러일으키는 우리 안의 분단을 계속해서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은 정치, 이념, 종교, 세대, 좌우를 막론하고 생겨나고 있다. 김 교수는 “혐오의 대상은 전방위적으로 확산하여 모든 이들이 혐오의 발화자이면서 동시에 대상자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단화되는 갈등과 혐오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문제에서 첨예한 갈등을 초래하고 있으며, 한국 사회는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 위기나 국제 질서의 재편, 기후 재앙과 같은 위협에 적절한 대응은커녕 문명사적 전환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특히 분단 체제에서 ‘빨갱이’란 단어는 언제든 몰살할 수 있는 존재이자, 비인간적 특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어떤 혐오를 퍼부어도 용인될 수 있는 존재가 됐다”며 “나와 너를 구분하는 세계관은 한국 사회를 규정짓는 사회적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박인호 NK 투자개발 연구원은 논평에서 이를 ‘혐오의 집단극화’라고 분석했다. 유사한 의견을 가진 구성원들이 집단 토론을 거친 후 그전보다 더 극단적인 주장으로 기운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 일부의 혐오도 집단극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북한으로 표상되는 북한이탈주민
오늘날 국내 3만 명이 넘는 북한이탈주민은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까. 김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이 한국 사회 내 구성원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이슈에 따라 때로는 혐오스러운 존재로 재현되거나 북한의 도발과 같은 이슈와 연관되어 공포나 불안의 감정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핵실험·미사일 발사와 같은 북한의 도발이 계속될수록 북한 출신인 탈북민에 대한 감정적 거리감이나 적대적인 감각이 확대될 수밖에 없으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통일에 관한 관심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탈북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오랜 분단 체제가 이들을 남북 사이에서 또 다른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김 교수는 이들을 향한 적대적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선 “이들의 현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이 경험하고 있는 정착의 과정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공유되어 이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탈북민 중 70%가 넘는 비율이 여성인 데다, 대북 전단을 날리거나 정치운동에 나서는 탈북민보다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일자리 찾기에 골몰하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북한이탈주민과의 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한다면 더더욱 이들이 ‘어디’ 출신인지, ‘어디’와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지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향후 어떤 존재로 함께하게 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음적 전환(the mindful turn)
김 교수는 혐오와 공포, 불안 등으로 드러나는 고착화된 분단의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마음적 전환’을 제시했다. 혐오라는 감정을 해체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는 힘으로 제도나 정책 수립 이전에 이성, 감정, 의지, 감각 등 총체로서의 마음, 분단에 대한 총체적 해석에 주목한 것이다.
김 교수는 “마음은 쉽게 정의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이론적 정립이 어렵지만, ‘마음’에 주목하면 사회 통합과 체제 통합을 위한 구체적 방안과 전략의 도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마음이라는 번역 불가능한 개념을 활용한 이유는 “‘지금, 여기’ 복잡한 한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정서를 문제시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그러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이 전제돼야 한다”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불완전한 주체’에게 타자란 협력과 관계의 대상이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병로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논평을 통해 “‘불완전한 주체’라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소통을 증진함으로써 혐오를 사랑의 관계로 바꾸는 마음의 전환은 타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가 커지는 이 시기 한반도에서 중요한 해법”이라고 공감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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