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학자 파스칼에 관한 사목교서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 발표
- 교황, 파스칼 칭송하는 사목교서 발표... 파스칼의 신학·영성적 업적 소개
이성으로 신앙의 진리 탐구한 파스칼, 인간의 위대함은 이성의 한계 깨닫고 스스로 비참해지는 데 있다고 강조
블레이즈 파스칼 초상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소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17세기 프랑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1623-1662)을 칭송하는 사목교서를 16일 발표했다. 16일은 파스칼 탄생 4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황이 일반 대중에 더 친숙한 역사 속 인물의 면면을 집중 조명한 교서를 내놓는 것은 드문 일이다. 교서 분량도 8쪽으로, 양이 적지 않다.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Sublimitas Et Miseria Hominis)」이라는 교서 제목부터 흥미를 끈다. 교황은 서두에서 “인간의 위대함과 비천함, 이 역설은 파스칼이 남긴 사상과 영원한 메시지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또 그를 “지칠 줄 모르는 진리의 탐구자”라고 정의했다.
파스칼은 수상록 「팡세」를 쓴 철학자로 유명하다. 수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수학과 물리학, 기하학 분야에 남긴 업적은 더 눈부시다. 그는 물리학 기초인 파스칼의 원리를 만들고, 컴퓨터의 전신인 전자계산기를 발명했다. 국제 압력 단위인 파스칼(Pa)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0대 중반부터 수학과 과학의 복잡한 원리를 증명해 당대 학계를 놀라게 한 천재다.
그에 비해 파스칼의 신학적, 영성적 업적은 묻혀 있다. 교황이 그의 신앙적인 면을 조명한 이유다. 교황은 “파스칼은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교 진리를 믿을 확실한 이유가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경험을 통해 하느님의 계시 내용은 이성의 요구에 반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떤 철학도 스스로 얻을 수 없는 놀라운 대답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파스칼은 신앙의 영역에서도 합리성을 중시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는 맹목적 신앙을 경계하면서 이성의 힘으로 신앙의 진리를 탐구했다. 이성의 한계를 인식하는 사이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사유에 도달했다. 결국 그는 “인간의 위대함은 (이성의 한계나 존재론적 불안감으로 인해) 자신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교서 제목은 이 결론에서 발췌한 것이다.
파스칼의 이런 신앙적 사유가 집대성된 「팡세」는 수상록으로 분류돼 있지만, 사실 그가 31세에 회심한 후 그리스도교 진리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둔 미발표 원고를 묶은 종교 서적이다.
흔히 ‘불의 밤’이라고 불리는 그의 회심은 1654년 11월 23일 밤에 있었다. 그날 밤 십자가에 깃든 하느님 사랑을 깨닫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그는 그날의 영적 감동을 기록한 메모를 외투 안쪽에 덧댄 천에 넣고 죽을 때까지 몸에 지녔다고 전해진다. 메모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났다. 그분에게서 도망치고 포기하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주님, 그럼에도 제가 당신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해주소서”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교황은 이 메모를 “영성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텍스트 중 하나”라고 극찬한 바 있다.
교황은 특히 파스칼이 39세에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한 말에 주목했다. “하느님께서 회복을 허락하신다면, 남은 생애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이나 직업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교황은 “위대한 천재가 생의 마지막 날에 자신의 힘을 자비를 실천하는 데 쓰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고 깨달은 게 참으로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스칼의 모범이 우리가 진리, 회심, 자선의 길을 끝까지 인내하며 걷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황은 파스칼을 대단히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한 인터뷰에서 “파스칼은 시복시성 대상자가 되기에 충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했다. 또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실재(reality)는 생각(ideas)보다 더 중요하다”(233항)고 강조했는데, 이 말 역시 파스칼의 저서에 자주 나온다. 교황청 문화교육부 장관 톨렌티누 드 멘돈사 추기경은 16일 교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교황은 파스칼의 심오한 추종자”라고 밝혔다.
교황은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 관한 교서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멘돈사 추기경이 전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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