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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女 마더 데레사 님

<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

<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

다 비우고 평생 나누었기에 더 고독했던 여성

1986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테레사 수녀.

마더 테레사는 몇 해 동안 말없이 고통을 견디면서 자신의 마음상태를 아주 가끔 모호하게 드러냈다. 그러다 마침내 주교 앞에 무릎을 꿇고 도와달라고 청한 것이다.

대주교에게 편지를 보낸 1년 뒤 테레사는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진다. 가장 믿었던 사람들과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소외감으로 가득했다. 아마 이런 심적 상태는 선교회라는 조직을 이끌면서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고통과 연결된 것이었으리라.

‘제가 예수님을 원하면 원할수록 예수님은 저를 덜 원하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방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지만 예수님과 멀어진 느낌, 끔찍한 공허함, 하느님이 제 옆에 계시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그녀 사후에 공개된 고해성사 편지들은 구구구절 절박함으로 가득하다. ‘제 영혼은 너무 많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거부당하는 느낌에 공허함까지 계속되어 신앙도 사랑도 열정도 없습니다. 영혼도 저를 끌어당기지 못하고 천국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 제가 누구이기에 저를 버리십니까. 저는 이렇게 애타게 부르고 매달리며 간절히 원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어둠은 너무나 짙습니다. 저는 버림받았습니다.’

그녀는 평생 표면적으로는 명랑한 모습을 잃지 않았고 일도 열심이었다. 그렇다고 이게 위선적인 가면은 아니었다. 그녀라고 펑펑 울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마더 테레사는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절대 드러내지 않았다.

1957년 예수회 요셉 노이너 신부는 독일의 한 선교잡지에 테레사 수녀와 그녀의 사업에 대한 글을 실었다. 뜻밖에 수녀는 자신의 고뇌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쓴 노이너 신부의 회상에는 테레사 수녀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수녀님은 내적 시련을 겪고 있지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복잡하게 얽힌 환상의 희생자가 된 것일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느님은 왜 그녀를 버리셨을까? 왜 그녀는 지금 이런 어둠을 겪는 것일까? 마더 테레사에게 몇 년 동안 개인적인 삶은 없었다.

다른 수녀님들을 지도하며 인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 수녀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신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마음에서는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처럼 떠들어대는 고약한 위선자가 된 것은 아닐까 고민하고 있었다.’

★캘커타 빈민과의 공통점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힌 것은 시간이었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그녀를 괴롭히던 생각들은 차츰 고요와 평화로 바뀌어갔다. 그러면서 그녀는 진정한 사랑은 ‘굴복’임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神께 굴복하니 가난한 인도인들이 단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일체감을 느끼게 됐다.

모든 이에게 거절당한 채 고통 속에 버려진 캘커타 거리의 사람들이야말로 ‘나의 영성생활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동료 수녀들의 모습도 새롭게 보였다. ‘그녀들이 점점 하느님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행복을 느낍니다.’

테레사 수녀는 결국 오랜 내적 어둠 속에서 신의 부재를 느끼는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큰 절망과 고통에 빠지게 되는지를 이해하고 체험한 것이다.

1975년에 설립 25주년을 맞은 ‘사랑의 선교회’는 전세계 15개국 85개 분원에 3000명 이상의 수녀를 가진 수도회로 성장했다. 이후 전세계로 급속히 확장됐고 마침내 세계 언론이 마더 테레사와 캘커타의 기적에 주목했다.

마더 테레사는 원래 심장이 좋지 않았다. 1987년 멕시코 슬럼가를 돌보던 때에는 가벼운 발작을 일으켜 미국에서 가슴에 심장 박동기를 다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수술 후에도 “나는 선 채로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싶다”며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처럼 일했다. 1996년부터 테레사 수녀는 자주 입원했다.

말 그대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침대에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날이 많았다. 그녀의 육신뿐 아니라 정신도 큰 고통을 겪었다. 이즈음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너무 많은 것을 (나에게) 원한다”는 말로 심적 고통을 표현했다.

1997년 9월5일 오후 9시30분, 테레사 수녀의 목숨이 꺼졌다. 마더 테레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 최후의 순간에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지만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을 준비하며 ‘하느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기뻐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누군가 “마더, 우리를 떠나지 마세요. 마더 없이 살 수 없어요”라고 애원하면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걱정 말아요. 제가 천국에 가면 여러분을 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을 거예요.”

모든 것을 비운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모두 똑같은 육신을 갖고 태어나지만 정신의 숭고함으로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을 마더 테레사는 증명해냈다.(2009년 8월 글 다시 옮겨)

- <신동아 연재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