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信仰人의 삶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사목자로 살아오면서 줄곧 지내고 있었던 바람이랄까, 사명감이 한 가지 있는데,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과 교우들에게 성경 말씀을 쉽고 친숙하게, 흥미진진하고 가슴설레게 소개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제 그런 소박한 바람이 작은 결실 하나를 맺었습니다. 한없이 부끄럽지만 성경을 흥미진진하게 읽도록 소개하는 안내서 ‘흥미진진 성경읽기’(생활성서)가 출간되었습니다.
 
펼쳐보니 ‘이런 걸 책이라고 냈냐’는 분들도 계실 텐데, 하는 걱정도 없지 않지만, 그저 제 바람은 오직 한 가지, 우리 청소년들과 교우들이 보다 편안하게, 그리고 흥미와 열정과 사랑을 지니고 성경을 접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소주잔을 주고받은 메시아, 한잔 술에 기분이 좋아져 죄인인 인간들과 밤늦도록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 부르는 메시아,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메시아, 우리와 마주 앉아 썰렁한 아재 개그를 연발하시는 메시아...우리의 하느님은 이처럼 따뜻하고 친근한 분이십니다. 우리와 멀찍이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라 키 작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키를 낮추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낯설어할까 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메시아이십니다.”(흥미진진 성경읽기 본문 중)
 
오늘도 또다시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들을 펼쳐봅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로 소개되고 있는 바오로 사도의 옥중 서간 필레몬서의 내용이 참으로 흥미롭고, 동시에 눈물겹도록 감동적입니다.
 
평생토록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선포에 매진하느라 온몸과 마음이 너덜너덜, 탈진한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그간의 노고를 봐서 은퇴 주교님이나 사제들처럼 조용한 곳에서 편안하게 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목숨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시로서는 전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시면서 초대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그들을 격려하는데 헌신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바오로 사도는 자주 옥에 갇혔습니다. 그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그토록 고생하며 여러 교회 공동체를 건설했는데, 그에 대한 보답으로 따뜻하고 주님께서는 소박한 거처 하나 마련해주지 않으시다니, 이 나이 먹도록 옥에 갇혀서 이게 무슨 꼴인가...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결코 자신이 옥에 갇힌 것에 대한 조금도 불평불만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투옥된 것을 기쁨이요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찬가를 크게 불렀으며, 옥중 서간들을 통해 바깥에 있는 신자들을 끊임없이 격려하고 성장시켰습니다.
 
더 놀랄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노구에도 옥에 갇힌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옥중에서 인연을 맺게 된 자신의 제자 오네시모스를 걱정합니다. 노예인 오네시모스를 원주인에게 되돌려보내면서, 그에게 잘 대해줄 것을 신신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이러한 내가 옥중에서 얻은 내 아들 오네시모스의 일로 그대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나를 맞아들이듯이 그를 맞아들여 주십시오.”(필레몬서 7장 9절, 17절)
 
당시로서는 가축처럼 매매가 되곤 하던 종 오네시모스를 아들이자 제자로 여겼던 바오로 사도의 태도가 존경스럽습니다. 원주인에게 직접 편지까지 써서 오네시모스에게 너그럽게 대해줄 것을 간청하는 바오로 사도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적입니다. 이토록 인간미 넘치는 바오로 사도, 그리고 우리 주님이 너무 좋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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