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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한국교회

사제 노후의 정체성과 품위 유지 위해 교회 힘 모아야

  • 사제 노후의 정체성과 품위 유지 위해 교회 힘 모아야

 

은퇴를 앞둔 대전교구 사제들이 교구가 마련한 대건연수에 참여해 산보를 하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대와 희망보다는 불안과 두려운 감정이 큽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신부로서 잘 살 수 있을지….”

사제단 고령화는 한국 교회가 지닌 고민 중 하나다. 지난 16~20일 공주 수리치골 피정의 집. 대전교구가 은퇴를 앞둔 사제들을 대상으로 닷새간 진행한 ‘대전교구 대건연수’에서 만난 김기만(대전교구 연무본당 주임) 신부도 40여 년 사제생활을 잘 해왔지만,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에 대전교구는 은퇴를 앞둔 65~69세 사제들을 위해 ‘대건 연수’를 마련해오고 있다. 사제 노후의 삶, 복지, 나아가 여러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2014년부터 개최해오고 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900만 명을 넘어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가운데, 교회 내 성직자 고령화 현상도 자연스레 나타나고 있다.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성사전담사제(원로사목자) 비율이 2021년 처음 전국 교구 전체 사제 수의 10%를 넘었다. 지난해에는 10.5%(490명)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10년 전인 2012년(249명)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대전교구 대건연수’에는 사제 17명이 참여했다. 대상 연령 사제가 15명 이상 되면 연수가 개최되는데, 4년 만에 열렸다. 첫해인 2014년 개최 후 두 번째 연수 개최까지 5년이 걸렸고, 이어 올해까진 4년이 걸렸다. 다음 연수는 3년 후로 예상된다. 간격이 해마다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10월 기준 대전교구 사제는 399명. 이중 성사전담사제는 57명이다. 10년 후엔 47명이 추가돼 교구 성사전담사제가 100명이 넘을 전망이다. 현재 교구 신학생 수는 50명이 채 안 된다. 이같은 흐름을 일찍이 인식한 교구는 대건연수를 통해 교구 미래를 위한 공동 의견도 나누고 있다.

교구 사목국장 김경호 신부는 “대건연수는 단순히 교구가 성사전담 사제들의 복지를 고민하고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교회가 사제성소부터 사제의 삶 전반을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러기에 김 신부는 “이 같은 노력은 일선 본당의 사목자뿐만 아니라, 성소자들과도 연관되는 교구의 대응이자, 실천의 연장선과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수는 교구 총대리 한정현 주교의 말씀 전례를 시작으로 대전을 넘어 타 교구 원로 주교와 사제들의 강의와 나눔, 노년 건강을 위한 전문가 강연, 교구장 김종수 주교와의 만남까지 다양한 일정들로 구성됐다. 은퇴 후 공동사제관에서 함께 생활할 동년배 사제끼리 모여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고 친교도 미리 나누도록 산보와 같은 자유 시간도 넉넉히 마련했다.

이번 모임에서 가장 맏형인 김용남(논산내동본당 주임) 신부는 “사제들에게도 외로움과 고독의 문제가 크다”며 “공동생활을 해나갈 때 어려움도 있겠지만, 곁에 동료가 있다는 든든함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만 신부는 “신부로서 정체성과 품위를 지키면서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교구가 많은 고민과 시도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자리를 마련해준 덕에 다시금 마지막까지의 사제 삶을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경호 신부는 “은퇴를 앞둔 사제들을 위해 교회 안팎의 전문가를 초청해 강의하고, 서로 나눔하는 시간을 갖는 교구의 배려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타 교구도 동참해 교회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