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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김수환 추기경

< 상처 입은 치유자 >

< 상처 입은 치유자 >

우리 인간의 죄란 무엇입니까?

왜 이 세상에는 죄악과 불행이 가득합니까?

그 근본은 이기주의에 있습니다.

모두가 남보다는 자기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살기 때문에

남을 거스르고, 미워하고, 해치고, 죽이는

죄악이 범람하여 인간 세계는

이렇게 오늘까지 구원되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는 혹시 각자 자기는 남보다

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심리가 벌써 남을 깔보고

자기를 앞세우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입니다.

어떤 분이 쓴 책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기 죄를 계산하는 저울과

타인의 죄를 다는 저울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같은 잘못을 두고 남이 한 것은 호되게 비판하고

적어도 속으로 단죄하면서도

자기가 한 짓에는 관대하게 이유를 붙이고

변명을 해서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의 누구도

이런 이기심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인간의 구원은

이 이기심에서 벗어나는 데서부터 옵니다.

자기 자신 역시 남과 같이 가난하고 불행할지라도

자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안다면,

거기서 인간의 구원은 시작될 것입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에 보면,

마지막 장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떤 유다교 랍비가 엘리야 예언자에게 가서

"메시아는 언제 오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엘리야는 "네가 가서

그분께 직접 물어 보아라"라고 하셨습니다.

랍비는 어리둥절해져서

"도대체 어디 누구에게 가서 물어 보라는 것입니까?"

라고 반문했습니다.

이 물음에 엘리야는 "저 성내에 가면,

병든 거지 떼들이 모여 앉아 있다.

모두가 상처 입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 상처를 감은 붕대를

한꺼번에 풀었다 감았다 한다.

그들은 늘 어느 순간이든지

'남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즉시 가서 그를 도와주어야지'하며

항상 남을 생각하고 있다.

이 사람이 메시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세상의 구원은 이 사람처럼

자신도 남과 같이 상처 입고 가난하면서도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삶, 존재까지

남을 위해 바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