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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묵시1-4.5ㄴ.2.1-5ㄱ.루카18.35-43)

                               <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조금 전에 들은 것도 금방 잊어버린다면서 치매 초기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꼭 나이가 들어서 자주 깜빡깜빡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래 우리 기억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 마크 빅터 한센에 의하면, 들은 것의 64%는 하루 안에 사라지고, 98%는 일주일 안에 없어진다고 합니다. 즉,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기억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의사 맥스웰 몰츠는 같은 생각을 열일곱 번 이상 반복하면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기억의 한계.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잘못된 점은 잊어버려야 할 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남에 대한 미움, 부정적인 생각들…. 분명히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열일곱 번 이상 반복해서 생각하기에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금방 잊어버립니다. 한 번만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끝인 것처럼 생각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 잊어버립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감사의 마음을 전혀 갖지 않아서 잊음의 관계만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요? 그 결과는 주님과의 관계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리코의 소경 이야기를 복음은 전해줍니다. 이 소경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길가에 앉아 구걸하고 있는 모습은 이제까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지요. 이제 그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만히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장애물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는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꾸짖습니다. 예수님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또 죄인인 주제에 왜 큰소리를 지르냐고 꾸짖었겠지요. 이런 장애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에 자기 구원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계속된 그의 외침을 떠올려 봅니다. 이 외침의 반복을 통해, 그는 주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마음속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믿음의 외침으로 어두움을 걷어내고 빛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계속 반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모든 것은 빨리 잊어버려야 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레오나르도 다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