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의 福音 묵상

<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묵시3.1-6.14-22.루카19.1-10)

                <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남학생에게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와 학교에 있을 때, 계속해서 이 여학생이 생각났고, ‘연인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마음이 점점 커졌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이 여학생은 학교에서 퀸카로 통했고, 자신은 보통 남자아이보다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못생기고 뚱뚱했습니다.

얼마 뒤, 이렇게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던 이 남학생은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글쎄 자기와 제일 친한 친구와 여학생이 서로 사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친구와 자신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자기보다도 못한 것 같았습니다. 키도 작고, 공부도 못하고, 외모도 그리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한다’라고, ‘사귀자’라고 고백했지.”

생각만으로는 자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정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 몇 마디를 못 해서 후회만 남기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말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어떤 것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도 이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이가 ‘아직은 아니다.’, ‘내 체면에….’ 등의 말을 하면서 용기 내지 못합니다. 큰 후회를 남길 것입니다.

자캐오는 예리코 세관의 세관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이러한 지위와 재산 상태는 구원받고 못 받는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예수님을 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구원의 시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구원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 뵈옵기를 원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세관장이며 부자인 그가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을 상상해 보십시오. 채신머리없다는 말을 듣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뵈옵기를 바라는 마음에 체면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용기 있게 주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자캐오는 주님을 모시기 위한 준비로 무엇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산에 대한 애착심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약속합니다.

회개의 표시로 자기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횡령하면 네 곱절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율법의 규정보다도 훨씬 더 지나친 것이었습니다. 율법의 규정은 자선은 재산의 20%, 부당하게 얻은 재산은 5분의 1일을 배상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진심으로 회개했던 것입니다. 이런 그의 진심에 구원받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진심으로 주님을 뵈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용기 없이 주님을 뵙지 못하는 이유만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모험은 당신이 꿈꾸던 삶을 사는 것이다(오프라 윈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