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詩, 곰삭한 맛

이 보게 친구(서산 대사 시)

이 보게 친구(서산 대사 시)

살아 숨 쉬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이 마시고

마신 숨 다시 쉬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이 마신 숨

내 쉬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은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은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 인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 길 가는대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려니

쓸 많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 쥔게 웬 만큼 되거들랑

자네 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 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 스러짐이니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에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들 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 구나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다네.

- 휴정 서산대사의 시 -

 

'詩, 곰삭한 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물꽃 소년(내 어린 날의 이야기)」  (0) 2024.03.09
소중한 것  (0) 2024.03.03
<기도> ㅡ 구상 시 모음  (2) 2024.02.27
삶의 이야기  (0) 2024.02.26
<흙의 말씀>  (0) 2024.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