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게 친구(서산 대사 시)
살아 숨 쉬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이 마시고
마신 숨 다시 쉬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이 마신 숨
내 쉬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은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은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 인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 길 가는대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려니
쓸 많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 쥔게 웬 만큼 되거들랑
자네 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 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 스러짐이니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에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들 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 구나
삶이란 한 조각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구름이 스러짐이라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 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다네.
- 휴정 서산대사의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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