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즈카르야2.14-17.마태12.46-50)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고대 로마는 다신교였습니다. 하나의 신이 아닌 여러 신이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러 신 중에 부부 싸움의 수호신이 있습니다. 비리프라카 여신입니다.
부부 싸움을 하면 비리프라카 여신을 모시는 사당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한 번에 한 사람씩 차례로 여신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여신에게 호소하는 동안 다른 한쪽은 잠자코 듣고만 있어야 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다 보면 상대방의 주장도 일리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되풀이하면서 호소하는 동안 흥분했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고, 결국 여신을 찬양하면서 둘이 사이좋게 사당을 나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와 다툴 때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이야기하기에 더 바빴던 것이 아닐까요? 내 말을 통해 상대의 이해를 바라기보다, 상대의 말을 통해 상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말을 듣는 것입니다.
서로 자기 말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말만을 통해서 어떤 화합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의 말을 잘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함께 사는 비결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를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 서는 것.’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하였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입니다. 단순히 봉헌만으로 성모님을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는 봉헌을 자기 삶으로 더 거룩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율법학자들은 마귀 들린 자라고 떠들곤 했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미쳤다는 소문을 돌게 됩니다. 그 소문을 들은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당시에는 자기 가문에서 사회적으로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성모님과 친척들이 서운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특별한 분이시고, 하느님께 봉헌되신 분이었습니다. 이런 분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끌고 집으로 갔을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았을 때도 마음에 간직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내 이웃과의 관계는 어떠하십니까? 나를 버리고 상대의 입장에 서서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늘 같은 풍경을 바라보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각자 본 풍경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이다(마스다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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