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금요일
(묵시록10.8-11.루카19.45-48)
< 빨리 무너지고 재건되어야 할 교회의 모습! >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오늘 너희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는 예수님의 경고 말씀이 오늘 제게 섬뜩하게 다가옵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 여파로 사무실 직원도 없다 보니, 피정 신청 전화도 직접 받습니다. 씁쓸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제가 먼저 ‘누굽니다’ 라고 밝히지 않은 잘못도 있지만, 전반적인 통화 분위기가 아랫사람 다루는 듯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무실 직원들, 감정 노동자들의 기분과 마음이 어떠할지 생생히 체험할 때도 있습니다.
피정 비용이 큰 관심사다 보니 정확히 말씀드려야 합니다. “최근 물가상승을 고려해서 1박 2일 세 끼 얼마고 2박 3일 여섯 끼 얼마입니다.”
그런 안내에 깜짝 놀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래서 또다시 곰곰이 성찰을 하게 됩니다. ‘그래 누군가에게는 그 돈이 얼마나 큰 돈인데.’, 하는 생각에 즉시 꼬리를 내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렇죠. 너무 비싸죠? 요즘 유류비, 식자재비 폭등으로 저희도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했답니다. 그렇지만 부담스러우시면 내실 수 있는 만큼만 내시면 됩니다.”
“저희 피정 센터 절대 저희 소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집이고, 하느님 백성의 집입니다. 특히 가난한 분들의 집입니다. 비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부담 갖지 마시고 마음 편히 오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최초로 보여주신 태도는 사뭇 의아합니다.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보통 사람들의 처신과는 크게 차별화됩니다. 당시 제한적이었지만 세속의 권력자였던 헤로데 왕궁을 찾아가지도 않으십니다. 빌라도 총독과의 면담 스케줄도 잡지 않으십니다.
가장 먼저 보여주신 행동은 타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성소요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의 장소였던 성전은 당시 완전히 본질을 망각한 채 크게 타락해있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세속화의 극치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막대한 권리금을 상인들로부터 받고 성전 마당에서 이런 저런 물건들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상인들은 성전 마당에 가판대를 쭉 늘어놓고 큰 목소리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환전상들도 이에 뒤질세라 여기저기서 말도 안 되는 시세로 돈을 바꿔주고 있었습니다. 경건하고 거룩해야 할 성전은 시끌벅적, 티격태격, 옥신각신, 바글바글...마치도 재래시장 한 가운데를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우스꽝스런 성전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평소와는 다르게 크게 진노하십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그저 분노에 그치지 않습니다. 밧줄로 채찍을 만드신 예수님께서는 성전 안에 죽치고 있던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내리치시며 밖으로 쫒아내십니다. 이어서 던지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뼈아프게 들려옵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루카복음 19장 46절)
오늘 우리 교회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혹시라도 예수님의 호된 채찍질을 피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오늘 우리 교회 역시 크게 한번 정화와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저는 하느님 크신 자비 없이 단 한순간도 홀로 설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여기서 나 보다 더 잘 난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 그래!’라고 외쳐대는 교만이 판을 치는 교회는 심각한 쇄신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애지중지하셨던 중죄인들, 극빈자들, 상처 입은 자들, 중환자들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문턱이 높은 교회는 지금 당장 정화가 필요한 교회입니다.
구성원간의 격의 없고 활발한 소통의 문화가 사라진 교회, 일방통행식, 일인독재식의 전근대적인 공동체 문화가 아직도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는 낡은 교회는 빨리 무너져야 할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 또 다른 예수님의 고통스런 절규에 귀를 막고 그들이 흘리는 피눈물을 외면하면서 우리끼리 높디높은 담벼락을 쌓고 그 안에서 화사하게 웃으면서 지내는 무늬만 성전인 그런 교회는 첫 번째 정화의 대상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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