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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걸림없이 산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사는 실상사 공동체는 매주 수요일 모든 활동가가 함께 공부하고 일한다. 종무소, 공방, 공양간 등 자신의 일터를 잠시 닫고, 스님들과 재가자들이 모여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농장에서 일한다. 공동 수행의 날이다.
올해는 ‘금강경’을 공부한다.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所依經典) 즉, 종단에서 근본으로 삼는 경전이다. 불자들은 여러 의식에서 금강경을 널리 독송한다. 49재에서도 이 경을 독송하면서 돌아가신 분을 잘 보내고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동아시아에는 수백 종의 금강경 해설서가 있다. 그만큼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경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의 삶과 분리되어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저런 바람을 모아서 금강경을 독송하면서 행간을 뜻을 잘 짚어가며 공부하기로 했다.
먼저, 우리 절의 어른 도법 스님이 경을 강의한다. 이어 대중이 모둠 토론을 한다. 내가 속한 모둠에는 절 밖에서 오신 분들이 많아서 친절하고 세세하게 뜻을 설명한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금강경을 다시 정독하니, 한 구절 한 구절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가르치며 배우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기쁨을 누린다.
‘금강경’의 본디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경의 이름에 금강경이 지향하는 바가 오롯이 담겨있다. ‘확고한 깨달음(금강 반야)’이 ‘일상의 삶에서 구현되기를(바라밀)’ 소망하는 경이다. 금강경은 언어와 관념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강조한다.
금강경은 붓다의 제자 수보리 존자의 평범하지만 예사롭지 않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수보리가 스승 붓다에게 묻는다. “세존이시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수보리는 삶의 지향과 자세, 즉 삶의 핵심을 묻고 있다. 수보리는 붓다의 말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고,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소 깊이 품었던 의문을 내어놓은 것이다. 의문을 잘 일으키고 정직하게 질문하는 것, 이것이 구도심이고 초발심이다. 그 스승에 그 제자가 아닐 수 없다. 매우 기특한 제자 수보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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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사부대중공동체의 아침 법회. 사진 실상사 제공
제자의 질문에 붓다의 답은 간명하다. “모든 관념에 묶이지 말라.” 이 한 문장에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비법이 담겨있다. 금강경은 관념에 묶이지 않는 삶의 여러 형태를 제시한다.
붓다가 제시한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 최고의 안락과 행복으로 가는 길인 관념의 해방, 그 관념이란 무엇일까? ‘관념’은 산스크리스트어로 ‘산냐’이다. 한자로는 상(相·想)으로 번역한다.
산냐, 관념은 무엇을 뜻하는가? 관념이란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사건과 상황에 대하여 생각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그림’ 즉, 각인이나 인상이다. 각인(刻印), 칼로 나무에 무엇을 새기고 그것을 종이에 찍어낸 형태. 인상(印象), 카메라로 피사체를 포착하여 촬영하고 현상한 사진.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마주하면서 끊임없이 판화와 사진을 찍어낸다.
그것이 우리 삶을 힘들게도 하고 기쁘게도 한다. 관념은 ‘나’를 구성하는 다섯 가지 집합체 오온(五蘊)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세 번째 ‘想’에 해당한다.
관념의 다른 표현은 ‘규정’이다. 예를 들어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가족 간의 불화가 잦으며,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직장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그런 상황과 사건들에서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규정할 것이다.
반면에 권력과 재력이 대단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 하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규정할 것이다.
자신을 열등한 존재, 우월한 존재라고 고정시키는 이것이 ‘산냐∙想∙관념’이다. 관념은 ‘만들어진 것’이며, 이 관념의 렌즈로 우리는 자기 삶을 해석하고 행동한다. 요즘 말로 프레임이다.
내가 만든 관념의 틀로 찍어낸 판화와 사진은 매사에 나를 따라 다닌다. 그 프레임에 갇혀 살면 삶은 악순환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가 어떤 일에 얽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면 처음에는 격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이 발생할 것이다(受). 그리고 ‘그는 나에게 모멸감을 준 불쾌한 사람’이라는 관념이 발생한다(想). 그렇게 만들어진 관념으로 나는 그 사람에게 좋지 않은 의도를 갖고 행위를 한다(行).
이렇듯 관념이라는 프레임은 내 삶의 자유와 창발을 묶는 족쇄가 된다. 또 다른 사람을 낮잡아 보고 자신을 높이는 관념을 가진 사람은 상대에게 교만한 행위를 하게 된다.
금강경에서는 일상에서 깨달음을 구현하려는 보살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에 대해 관념을 만들어 구속되지 말라고 한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마주하여 보고(色), 듣고(聲), 냄새 맡고(香), 맛보고(味), 감촉하고(觸), 생각할 때(法), 바람직하지 않은 想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아울러 좋은 想을 만들더라도 거기에 묶이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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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스님과 함게하는 공부. 사진 실상사 제공
한편, 집단의 관념은 건강하고 평화로운 사회로 가는 길목의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피부색이 다른 사람(色)에게 편견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인종차별주의자가 된다. 국가 전체주의, 유물론자, 성차별주의자, 민족 순혈주의자 등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불순한 집단 관념은 분열과 불평등,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며 불행의 발원지가 된다.
붓다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내가 만든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더 나아가 프레임 자체를 만들지 말라고 한다. 왜 그런가? 프레임은 만들어진 것이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만들지 않으려고 의도하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미 만들어졌다면 정직한 통찰과 용기 있는 결단으로 해체하라고 한다.
금강경이 강조하는 관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남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그 어떤 것에도 머무르거나 묶이지 말고 마음을 내라는 말이다.
무주(無住)와 행위(生心)의 조화로운 동행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떠올리고, 말하고, 행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하여, 무엇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엇을 하되 거기에 묶이지 말라는 뜻이다.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할 때,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생각조차 없이 하라는 뜻이다.
편견, 차별, 우월, 교만, 가문, 민족, 재력, 권력 등의 관념을 형성하지 말라는 뜻이다. 아울러 평등과 자애의 마음 씀에 집중하되, 내가 평등과 자애를 행하는 존재라는 관념에 묶이지 말라고 강조한다.
다시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이름에 주목해보자. 관념의 대척점에 ‘반야’가 있다. 반야는 언어와 관념을 초월한, 그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통찰의 지혜이다. 반야는 단순히 사물의 모습과 인과관계 등을 잘 이해하는 지혜와 다르기에 산스크리스트어 ‘프라즈냐’를 그대로 음사(音寫)하여 번역했다.
언어와 관념보다 앞선, 언어와 관념에서 자유로운 행위가 곧 반야바라밀이다. 반야바라밀의 구체적 삶의 모습이 ‘응무소주이생기심’이다. 즉, ‘색성향미촉법’을 대하면서 불순한 관념을 만들지 않고,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연민과 자애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금강경은 붓다의 형상과 설법에도 묶이지 말라고 철저하게 설한다. 선종의 큰 별 임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이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사자후로 반야의 정신을 토해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걸림 없는 자유이다. 내가 만든 밧줄에 내가 묶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쇠밧줄에 묶여도, 황금 밧줄에 묶여도 밧줄은 밧줄이다.
법인 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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