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통령, 나쁜 대통령 [아침햇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7일 ‘한국방송’과 신년 특별대담에 앞서 ‘더 벅 스탑스 히어’(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글귀가 적힌 책상 위 명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책상 위에 있던 명패의 복제품으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 때 선물한 것이다. 한국방송 화면 갈무리
강희철 | 논설위원
말은 의식의 반영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이런 말은 명백한 이상신호로 들린다. “걱정하지 마, 나 미국 대통령이야. 모든 게 괜찮을 거야. 강인하게 버텨!”
몇 마디에 불과하나 심중이 드러나 있다. 대통령이니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이란 자각이 있다면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이다. 공사 분별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은, 지난 14일 미국 뉴욕의 맨해튼 형사법정에서 공개돼 세상에 알려졌다. 트럼프의 ‘성추문 입막음’ 사건 공판에서다. 그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은 트럼프의 또 다른 ‘과거사’와 관련해 2018년 연방수사국(FBI)에 압수수색을 당한 직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 다독이며 안심시키려 했다고 증언했다. 트럼프가 집권 2년차에 접어들었을 때다. 딸과 사위의 고위 공직 임명, 퇴임 직전까지 반복한 측근 사면, 전세계를 경악시킨 국회 의사당 습격 선동은 우발적 행보가 아니었다.
대통령 권력의 사유화는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위험 요소다. 내각제 총리는 꿈도 꿀 수 없는 제왕적 권한 때문이다. 그만큼 유혹은 강렬하고 끈질기다. 기꺼이 넘어간 사람은 트럼프만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은 영혼을 팔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는 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특별검사팀 해체도 불사했고, 공개적인 거짓말 또한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버텼다. 그러다 드러나는 진실 앞에 사면초가 신세가 되어서야,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반대 부류의 대통령도 없지 않았다. 그는 대통령 권력의 무게를 처음부터 두려워했다. 불순한 욕망을 미사여구로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혹여 ‘특권’의 포로가 된 것은 아닌지를 내면의 심판관에게 부단히 물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갖게 되면서 저는 저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권력의 유혹에 굴복한 정치인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권력자들은 자신이 단지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점점 키우고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합니다.”(‘권력의 유혹’) 정치를 시작할 때 가졌던 정체성과 존재감의 상실은 시간문제다. 거기서 몇 걸음만 더 가면 자신에 대한 통제력마저 잃게 된다.
막강한 권력의 이면에는 이렇듯 악마적 유혹이 따라다닌다. 이 때문에 대통령직은 자칫 “죽음에 이르는 권력”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섬뜩한 경고를 한 사람은 체코의 초대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이다. 소비에트의 흉포한 그늘을 막 벗어난 신생 공화국에서 “하루아침에 운명처럼 (대통령으로) 고위급 정치 세계에 발을 들였”으나, 실패하지 않았다. ‘반추의 힘’이 없었다면 13년에 걸친 재임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사후 프라하 국제공항에는 그의 이름이 영구히 새겨졌다.
여기 또 한명의 대통령이 있다. 그도 하벨처럼 초짜 정치인에서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공정,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돌아오는 날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다수 국민의 표를 얻었다. 국정 제1목표를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로 정했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에는 영 다른 길을 갔다. 자신의 정체성(Presidential Identity)을 스스로 훼손하고 허물었다.
권력의 사적 행사는 특히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이 배우자 수사를 본격화하자 “가장 나쁜 기술”이라고 검사들이 말하는 인사를 통해 무력화를 시도했다. “키워드는 여사와 서울중앙지검장이다. 그 자리 하나 바꾸려고 때도 아닌 인사를 한 거다.”(검찰 고위직 출신 대통령 선배) 자신이 과거 두 정부에서 당한 일을 똑같이 되풀이했다. 그 일이 있기 전 5개월 넘게 잠행했던 대통령의 배우자는 이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여기저기 웃는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자신을 겨냥한 ‘채 상병 특검법안’에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애초에 ‘격노설’이 없었다면, 그래서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특검이 거론됐을까. 걸핏하면 법치를 말하는 대통령이 ‘아무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고래의 법언을 졸지에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무엇을 믿는지 최소한의 ‘위기 감수성’마저도 보이지 않는다. 트루먼의 명패는 알아도 닉슨의 전철은 모르는 모양이다. 8년 전 역사를 다시 불러낼지 모를 위험한 불씨가 기어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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