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선택 앞 청년들, 교회 공동체가 울타리 돼줘야
인권 주일 -청년 자살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던 2030 청년들은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사실은 “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인간 생명의 존엄을 회복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교회와 사회가 우선으로 할 일이다.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을 맞아 늘어가는 청년 자살 문제를 들여다봤다.
청년의 현실 돌아봐야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청년 자살률 증가를 사회 문제로 보고 있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는 자살의 요인을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의 부재다. 이는 힘든 상황을 겪는 청년이 자신의 고통을 극단적 선택이 아닌 다른 곳으로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여행이나 취미를 통한 즐거움일 수도 있고 또 업무 등을 통해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어 당장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막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접하기 쉬운 방안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거나 취업 준비기 청년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와해다. 소속된 공동체에서 맡은 역할과 그로부터 오는 책임감은 자살 행동을 지연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핵가족화, 개인주의 경향으로 집단적 결속이 약화하는 오늘날, 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편향적인 자살예방정책이다. 박 교수는 “현재의 예방정책은 자살 고위험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실제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 가운데 72%가 자살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었고, 자살 사망자 대부분이 저위험군에서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여러 접근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황순찬(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 역임) 교수도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 해체, 외로움을 비롯해 고용·주거·관계의 불안정 등 청년 자살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며 “이를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본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살아갈 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년들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같이 고민하고 이에 맞는 자살 예방 대책이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자살 예방 교육과 공동체성
청년 자살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월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관하는 2022 자살예방 인문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청년 자살 문제를 진단하고 더 나은 예방법을 모색했다.
일본에서 온 시미즈 야스유키 대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청년 자살률 현황을 전하며 국가적 차원의 예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비영리 법인 자살대책지원센터 라이프링크에서 정부와 함께 자살예방에 힘쓰고 있다.
라이프링크에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를 대상으로 SNS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내담자의 사정에 따라 정부부처·기관·단체·전문가를 연계하는 데 차이가 있다. 인식개선 활동도 활발하다. 시미즈 대표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고통을 겪는 청년이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모범 사례를 확산하려 한다”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는 것 외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청년이 된 후에는 예방 정책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SOS를 요청하는 방법이나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을 미리 제공해 청년이 되고 찾아오는 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종교 또한 청년을 포함한 전 연령대의 극단적 선택 문제를 예방하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박한선 교수는 “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가 침체한 IMF 시기에도 지금보다 자살률이 낮은 것을 보면, 고통의 강도가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의문”이라며 “집단적 접근을 확충해야 한다”고 전했다. 집단적 접근의 핵심은 공동체성이다. 사회적 관습과 규율 등 단체 행동에서 오는 억압감이 극단적 행동 양상을 억제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그는 “과거 구심점이 됐던 농촌 공동체는 우리나라에서 와해된 지 오래고 이미 복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은 종교”라고 했다. 특히, 보편성을 의미하는 ‘가톨릭’의 지향은 전체적인 자살률 감소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는 그 근거로 “집단의 가치를 강조하는 전통 신앙이나 가톨릭을 믿는 국가의 자살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을 들며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미 국가들의 낮은 자살률은 경제적 수준이나 범죄율 등을 고려할 때 고통의 정도보다 종교로부터 오는 결속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성당 사람들에게조차 고민 털어놓기 쉽지 않아”
성당 열심히 다니는 청년 유씨
성경공부·고해성사로 위로 받아
청년 눈높이 맞춘 접근법 필요
평소 성실하게 성당을 다녔던 유씨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을 당시 신앙에 의지하지 못했다. 유씨는 그 이유에 대해 “원래도 타인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오랜 기간 신앙 공동체에 몸을 담다 보니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사회생활의 일부가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라고 호소하고 싶었지만, 매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성당 다니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계기 역시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못하는 상황에서 성당에 갔다가 청년 성서모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성서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비밀이 원칙’이라는 말이 위안이 됐다고 한다. 성경을 읽고 느낀 바를 공유하는 ‘나눔’에 있어 피드백을 하지 않는 시스템도 도움이 됐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을 보고 밖에서도 말을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고해성사 때는 응어리 맺힌 게 울컥 터져 나왔죠. 그 뒤로 서툴더라도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됐어요.”
유씨는 “청년에게만큼은 교회의 접근 방식이 달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이다. 그는 “이미 교회에는 청년을 위한 양질의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만, 다소 깊은 영성을 요구하곤 해 그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의 구미를 당길 수 있도록 청년 입장을 반영해 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바로 3박 4일 피정을 권하기보다는 맛보기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마련한 뒤 청년 스스로 맛을 들여 한 단계씩 시도해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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