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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

히잡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

히잡 때문에 죽을 수는 없다

(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스물두 살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 테헤란으로 가족여행을 왔다가 지하철역 입구에서 ‘선도순찰대’에게 검거되었다. 흔히 종교경찰로 불리는 이들은 4인 1조로 움직이며 여성의 머리카락 길이가 너무 길지 않은지, 바지가 달라붙지 않은지를 따진다. 선도순찰대는 마흐사가 히잡을 불량하게 썼다는 이유로 체포했다. 머리카락을 모두 가려야 하는데 일부가 히잡 밖으로 나왔다는 거다. 순찰대의 주관적 판단에 따르면 그건 율법 위반이다. 이런 경우 벌금을 매기거나 재교육센터라는 구금시설에 끌고 가거나 매질을 한다.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인권침해이며, 명백한 국가범죄다.

 

마흐사 아미니는 체포 몇 시간 만에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고 사흘 만에 숨졌다. 타살이 명백했지만, 이란 당국은 대뇌 저산소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 사인이고, 갑자기 넘어져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연행되어 끌려가던 버스 속에서 경찰관들이 곤봉으로 마흐사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유족들도 마흐사가 평소에 아프지 않았다고 증언한다. 가족과 함께 먼 여행도 다닐 수 있는 스물두 살의 젊은이가 경찰에 체포되자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당국의 발표를 믿을 사람은 없었다.

이란 여성들은 분노했다. 자유를 위한, 아니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시위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선도순찰대의 만행이 거듭되고, 젊은 여성들이 표적이 되어 끌려가는 인권탄압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 일부라도 삐져나오는 게 죽임을 당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열여섯 살의 니카 샤카라미.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시위에 나섰지만 곧 실종되었고, 열흘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가족과 나눈 전화통화에서 보안군에게 쫓기고 있다고 했던 게 마지막 말이었다. 머리에 곤봉을 맞아 죽은 사리나 에스마일자데도 열여섯이었다.

지난 한 달 남짓 동안 수백 명의 십 대, 이십대 여성들이 시위 과정에서 죽어갔다. 이란 정부는 병으로 죽었다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등의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다. 여성들의 시위 때문에 자신들의 체제가 위협받는다고 여기는 이란 집권 세력에게는 여성들의 죽음이 모두 병 때문이거나 사고여야 할 테니, 죽음의 진실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란 여성들의 저항은 더 거세지고 있다. 지금처럼 허망하게 거리에서 죽어갈 수는 없다는 거다. 여성들의 구호는 그래서 “여성, 생명, 자유” 이 세 마디로 요약되었다.

히잡은 여성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의 한 종류일 뿐이다. 대부분의 이슬람 지역에서 히잡은 지역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관행에 머물지만, 이란에서는 엄격한 의무가 되었다. 히잡이 없으면, 학교에 다니거나 취업을 할 수도 없다. 선도순찰대의 길거리 검문검색으로 구금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하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야만적 탄압이 숱한 피해자를 낳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구축한 신정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지만, 히잡을 강요해야만 유지되는 체제라면, 차라리 무너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알라, 하느님, 천주, 상제, 야훼, 여호와. 그분의 이름을 뭐라 부르든 상관없다. 그분의 이름으로 여성에게만 정숙을 요구하고, 여성에게만 특별한 복장을 강요한다면, 게다가 머리카락이 히잡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며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다. 신의 이름이 사람을 차별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데 쓰일 수는 없다.

ⓒ 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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