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그의 지지율은 바닥이며 회복탄력성도 보이지 않는다. 오지랖 부인의 저지레로 남은 한 줌 지지마저 까먹는 것도 시간문제다.
지난주에도 궁중 담장을 넘어온 패설(稗說)이 뉴스를 뒤덮었다. 우리는 그녀가 제시한 지문을 읽고 “여기에서 말하는 ‘오빠’는 누구를 가리키는가?”라는 문제를 풀어야 했다. 이 ‘킬러문항’의 답은 실로 난해한 것이어서 그것을 제대로 쓴 사람은 없었다.
국민 오답 사태에 무안했거나 아니면 터무니없는 문제에 뿔이 났던지 보수언론의 한 칼럼도 윤 대통령에게 ‘나라인가 아내인가’를 택하라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가 선택해야 할 것은 ‘나라인가 아내인가’가 아니다. 윤 대통령의 선택지는, ‘이승만의 길인가 박근혜의 길인가’이다. 이승만은 4월 혁명의 함성에 허둥지둥 맨발로 뛰쳐나왔고, 박근혜는 촛불혁명의 힘에 초췌한 모습으로 머리를 풀고 끌려 나왔다.
이승만처럼 내쫓겨 걸어 나올 것인가 아니면 박근혜처럼 끌려 나올 것인가를 선택해야 할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는 건 날이 무디어진 칼이 전부다. 그의 칼은 한때 달빛을 가르던 검이었으나 어느덧 지금은 사심에 전 녹슨 검이 되었다. 윤 대통령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무릇 칼을 쥔 팔뚝의 힘이 쇠하면 칼은 주인을 벤다. 칼잡이들은 다 아는 금언이다. 자신의 칼이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날이 머잖았다. 검찰은 언제까지 그의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윤 대통령은 이승만, 박근혜와 다른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건 자신이 모든 걸 미리 내려놓는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정직하게 진상을 밝히고, 자신에 관한 각종 질문에 분명히 대답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확인하기 위한 특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무능을 고백해야 한다. 불통과 오만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국민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1987년 6월항쟁 때 길을 가득 메우던 넥타이부대의 함성을, 2016~2017년 촛불혁명 때 유아차를 끌고 나오던 엄마들의 합창을 이제 곧 듣게 될 것이다. 이들이 아직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윤 대통령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대통령직을 작파해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그가 출제한 ‘바이든, 날리면’을 변별하는 음운론이나, 그의 부인이 출제한 ‘오빠’의 뜻을 해석하는 의미론 문제를 풀면서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이게 나라냐?라고 생각을 하는 국민이 부지기수다.
이유는 불문곡직하고 그냥 윤 대통령이 보기가 싫다고 한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더니 이 나라가, 이 나라의 보수가,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고 본다.
주술의 힘을 믿는 아류들이 급기야 박정희의 유령까지 불러내는 굿판을 벌이고 있는 현실도 미래로 가는 길을 잃은 징표라는 것이다. 대구역 광장에, 경북도청 앞 숲에, 경주 관광 명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박정희 동상을 세워 그의 염력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키자는 청혼(請魂) 정치 굿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가 쓴 손바닥 글자와 다르지 않은 일이라고 여긴다.
다만 그들이 분노하면서도 행동하는 데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그렇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라는 대통령 퇴진의 효능감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쫓아냈는데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지?라는 질문이다. 여기에는 촛불혁명 이후 개혁에 대해 국민이 느낀 체감이 묻어 있다.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기대하면서 촛불광장에 즐겁게 나갔는데 그것의 상징 자산은 특정 정당이 다 차지했고, 그것의 실질 자산은 잘난 엘리트들만 가져가 버리지 않았느냐는 날카로운 질문이 있다. 이와 같은 국민의 생각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윤석열 퇴진도 퇴진이지만 윤석열 이후의 질서에 대해서도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윤석열 퇴진 집회에 걸린 ‘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라는 깃발은 그런 점에서 적절하다.
탁견이다. 개헌을 비롯한 대전환 과제를 정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촛불혁명으로 우리 삶이 뭐가 달라졌던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문재인 정부 시기에 대한 성찰과 반성, 사과도 필요한 일이다.
힘을 모으려면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면 힘을 모을 수 없다. 1987년 6월항쟁이나 2016~2017년 촛불혁명은 최소강령 최대연합의 성과로 이룬 일이라는 것을 환기한다.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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