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우리는 부부통치를 받게 되었나?
남한 부부통치는 북한 남매통치와 닮았다.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다. 김여정은 중대 발표 때 오빠 위임을 받았다고 공표하지만, 김건희가 국정개입 때 오빠 위임을 받는지는 알 수 없다. 김여정 오빠가 누군지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김건희 오빠가 누군지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 해서 김건희·명태균 대화록에 나오는 오빠가 어떤 오빠인지가 중요해지는 건 아니다. 세상의 시선은 오직 김건희를 향해 있다.
어쩌다 우리는 부부통치를 받게 된 것일까? 김건희 라인이 과시하는, 지난 대선 때의 활약상은 우리를 윤석열 정부 탄생기로 강제 소환한다. 좋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때 이야기를 해보자. 윤석열 정부 탄생의 비밀에 관한 많은 질문들이 여전히 대답 없이 허공을 맴돌고 있다.
상명하복의 위계조직에서 한번 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재능밖에 없다는 인물을 대통령감이라고 부추긴 사람은 누군가? 모두가 주시하는 대선 국면에서도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는 산만한 아저씨가 조리 있는 말과 행동으로 시민을 이끌 것처럼 호도한 사람은 누군가? 대통령 후보처럼 보이도록, 시키는 대로 연기해달라는 주문도 소화 못하는 서툰 배우를, 복합위기를 맞은 국가의 사령탑으로 내세운 사람은 누군가?
‘부인이 다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바보 혹은 멍청이’에게 나라 운명을 맡기자는 용기를 낸 사람은 누군가? 손 좀 들어보라. 그들 때문에 윤석열이라는 실패를 막을 1차 저지선이 뚫렸다. 왜 손드는 이가 비서실 행정관, 정치 브로커뿐인가?
그때는 몰라서 그랬다 치자. 이제는 다 안다. 윤석열 정부에 참여한 고위공직자는 윤석열의 무능과 무도함을 막기 위해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에 합당한 역할을 했어야 한다. 미국에서 윤석열과 비견되는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했을 때 장관·참모들은 그렇게 했다. 자신들의 막중한 임무에 부합되게, 트럼프의 무모한 요구와 충동적 결정을 견제했다.
당시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전임 장관이 대통령 뜻을 거스르다 해임된 사실을 알고도 나토를 탈퇴하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 진압에 군을 동원하라는 지시를 거부했다.
연방수사국(FBI) 국장 제임스 코미는 트럼프로부터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수사를 중단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대답하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는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았고 얼굴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이들이 트럼프에게 충실하지 않은 사람들이라서 그랬던 게 아니다. 법무장관 제프 세션스는 상원의원 중 처음으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대선 캠프 고문을 지낸 1등 공신이었다. 후임 장관 윌리엄 바는 극우 성향에 트럼프의 충복이었다. 그랬던 이들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자기 직무에 대한 책임성과 어긋날 때 자기 직분에 좀 더 맞는 행동을 했다. 그것뿐이다.
윤석열 정부 공직자에게는 그런 공직윤리가 없다. 윤석열의 거친 욕설, 격노 앞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트럼프는 그런 문제에서 윤석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사람이다. 비서실장 존 켈리에 따르면, “그는 항상 고함지르고 격분했다.” 그럼에도 각료·참모들은 직을 걸고 트럼프를 설득하고 반론하며 따졌고, 그래도 안 되면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있었던 일과 정반대다. 중책을 맡은 이들은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한술 더 떴다. 그들은 수동적 협력자가 아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결국, 이 책임감 없는 공직자들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실수를 최소화한 게 아니라 최대화했고, 그 때문에 윤석열 실패를 막을 2차 저지선도 무너졌다.
이제 최후의 저지선, 국민의힘만 남았다. 여당은 탄핵 방어 말고는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망하는 방법에 탄핵만 있는 게 아니다. 살아도 죽은 목숨이라는 게 있다. 윤석열 부부를 바꾸기는 어렵다.
그들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커플처럼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돌진할 태세다. 그러나 바꾸지는 못해도 막을 수는 있다. 집권당이 힘을 합쳐 행동하면 탄핵도 막고 윤석열 부부의 일탈도 제어할 수 있다.
그걸 위해 필요한 건 거수기 역할 거부, 대세 편승 행태 포기뿐이다. 다수 의원들은 윤석열 부부와 한동훈의 힘겨루기에 누가 대세를 쥘지 지켜보느라 눈이 충혈될 지경이다. 자기 집 불난 줄 모르고 불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주의는 값비싼 대가를 요구한다. 지금 당장 집으로 달려가 불을 꺼라.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 시대 길동무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이 돈이다> (2) | 2024.10.23 |
---|---|
윤석열 부부가 모르는 것 한가지 [강준만 칼럼] (1) | 2024.10.22 |
퇴진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 (1) | 2024.10.21 |
“한강 같은 작가 또 없을까요”…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붐 (3) | 2024.10.21 |
<저는 거리 한 구석에 있는 장님입니다> (0) | 2024.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