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을 위한 기도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에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한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나는 지금 나의 아픔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아픔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나의 절망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나의 절망만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연약한 눈물을 뿌리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남을 위해
우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죄와 허물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죄와 허물로
기도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지금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내 이웃의 평화를 위해서도
늘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모든 영혼을 위해
항상 기도하게 하소서.
나는 지금 용서받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나는 지금 굳셈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더욱 바르게
행할 수 있는 자 되게 하소서.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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