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꺼이 주기 >
우연히 할머니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성당 미사 시간이었다. 한 줌이나 될까 싶은 몸집에 골골이 깊은 주름, 사는 게 참 곤궁한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성가책을 앞에 놓고도 펼칠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찾는 게 힘들어 그러시나 싶어 성가가 바뀔 때마다 펼쳐 드렸다. 다음부터는 일부러 그 할머니 계신 곳을 찾아 옆에 앉았다.
어느 날, 시장 한 귀퉁이에서 쭈그리고 앉아 푸성귀를 팔고 있는 그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 저도 상추 좀 주세요." 나와 눈이 마주친 할머니가 화들짝 반색하신다. "그냥 줄게." "아니에요." 이렇게 돈을 주겠다, 안 받겠다 하는 실랑이가 매번 반복됐다.
그날도 할머니는 시장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상추와 씀바귀를 팔고 계셨다. "내가 상추 좀 줄게." 할머니가 부지런히 상추를 담으셨다. "그래요. 2천 원어치만 담아 주세요."
"돈 안 받어. 씀바귀도 줄게." "아니에요. 돈 드릴게요." 순간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럼 안 줄겨." 할머니는 담았던 푸성귀들을 다시 풀어 놓고 눈길까지 거둬버렸다. "그냥 가.
사람이 돈을 받을 사람한테는 받고 그냥 줘야 될 사람한테는 그냥 주는 거지. 어떻게 사람 마음을 그리도 몰라?" "어머니, 잘못했어요. 그냥 가져갈게요. 공짜로 가져갈게요." 한참을 빈 끝에 상추와 씀바귀를 얻어왔다.
사람이 사는 일에 어찌 정답이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살이의 기본은 그 할머니 말씀 안에 함축되어 있지 않나 싶다. 돈을 받아야 할 사람과 그냥 줘야 될 사람을 잘 분별하는 것, 그 이치를 깨닫고 실천하는 것, 일일이 계산하고 따져가며 인색하게 굴지 말고 줘야 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눠주며 사는 것.
- 이경숙/ 경기도 부천시 원종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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