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토요일
(3요한5-8.루카18.1-8)
<임마누엘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 한 가운데, 그리고 내 안에 굳건히 현존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 하나를 선물로 주십니다. 해도 해도 어려운 것이 기도인 것 같습니다. 때로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알쏭달쏭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의 참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그렇게 어떤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남기셨는지를 유심히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오늘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말 마디 그대로, 표면적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고 묵상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할 때 적당하게가 아니라 집요하게 졸라대는 과부처럼 하느님이 귀찮을 정도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너무 괴롭고 귀찮아서 청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뉘앙스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7-8)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한 군데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청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청하고 있습니까?
기도 지향, 미사 지향의 대부분은 가화만사성, 명문대 합격, 좋은 직장 취직, 좋은 배우자와의 만남, 승승장구, 무병장수... 등등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한계와 결핍 투성이인 한 인간 존재가 불완전한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다보니, 자연스레 우리네 인생은 우리가 전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세상 든든했던 그, 영원히 나를 지켜줄 것으로 확신했던 그가 점점 약해지고 작아집니다. 결국 나를 홀로 두고 먼저 떠나갑니다. 유일한 희망이요 미래라고 여겼던 자녀가 갈팡질팡 흔들립니다.
마치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속절없이 세월이 흘러 인생의 끝자락에 서게 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쇠잔해진 내 모습을 직면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바치는 기도 지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우리가 나이들어가면서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할 엄중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청해야 하겠습니까? 집요한 과부가 청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올바른 판결이었습니다. 우리처럼 너무나 사소하고 자기중심적인 그런 청원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청원 기도가 내 위주의 청을 넘어 주님 마음에 드는 청원 기도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휘황찬란한 대상들,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할 것 같은 우리네 인생도 한 순간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불로장생, 불사불멸을 청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우리가 집요하게 청해야 하는 기도는 성령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힘차게 활동하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동적으로 머무실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참으로 큰 은총이 있습니다.
매일의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임마누엘 주님께서 언제나 우리 한 가운데, 그리고 내 안에 굳건히 현존하신다는 의식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핍과 모순 투성이인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우리 신앙 여정의 충실한 동반자이신 성모님께서 항상 나를 인도하게 계신다는 의식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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