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세상 어디에 있는가 - 자기 관리>
가을이 짙어간다.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개울가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한다.
성급한 나뭇잎들은 서릿바람에 우수수 무너져 내린다. 나는 올 가을에 하려고 예정했던 일들을 미룬 채 이 가을을 무료히 보내고 있다.
무장공비 침투로 영동지방 일대는 어디라 할 것 없이 긴장되어 뒤숭숭하다.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을 못 막는다'는 옛말이 새롭게 들리는 요즘의 시국이다. 내 거처는 작전지역과는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그래도 같은 영동지방이라 긴장된 분위기를 나누어 갖지 않을 수 없다. 길목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군인과 경찰들이 검문검색을 하는 바람에 될 수 있는 한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
오고 가는 길에 혹시라도 내 '비트'가 노출될까봐 나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
요즘에 와서 나는 새삼스럽게 자기 관리에 대해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우리처럼 단신으로 사는 출가 수행승의 경우,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면 자칫 주책을 떨거나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를 망각한 채 나설 자리 안 나설 자리, 설자리 앉을 자리를 가리지 못하면 추해지게 마련이다. 더구나 세속적인 상업주의에 편승하게 되면 그의 말로는 물을 것도 없이 처량해진다.
전에 큰절에서 여럿이 어울려 살면서 나이든 노스님들의 처신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그때마다 그분들은 후배들에게 깨우침을 준 선지식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자취를 되돌아보면, 그것은 하나의 과정으로 순례의 길처럼 여겨진다.
지나온 과거사는 기억으로 우리 기억으로 우리 의식 속에 축적된다.
대개는 망각의 체에 걸러져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어떤 일은 어제 겪은 일처럼 생생하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사가 기억만으로는 현재의 삶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사를 자신의 의지로 소화함으로써 새로운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인다.
그래서 그 과거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망각은 정신위생상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 망각 때문에 어리석은 반복을 자행하는 수도 있다.보다 바람직한 자기 관리를 위해서는 수시로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남의 눈을 빌어 내 자신의 살림살이를 냉엄하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자기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작은 이익에 눈을 파느라고 큰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탐욕스런 사람들은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누가 내 면전에서 나를 존경한다는 말을 할 때 나는 당혹감으로 몸둘 바를 몰라한다. 그리고 그런 말에 내심 불쾌감을 느낀다.
참으로 존경한다면 면전에서 말로 쏟아 버릴 일이 아니다. 그런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타인으로부터의 존경은 눈에 보이지 굴레요, 덫이다. 그 존경이라는 것이 언제 비난과 헐뜯음으로 바뀔지 모른다. 자기 관리에 방심하면 이런 굴레에 갇히고 덫에 걸리기 십상이다.
최근에 나는, 평소에 나는 믿고 따르는 한 동료에게 실망과 서운함을 안겨 준 일이 있다. 텔레비젼 출연과 책 만드는 일을 두고 , 내 처지와 분수를 곰곰히 헤아린 끝에 그 일들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내 불찰은 안으로 깊이 헤아려보기도 전에 미적미적 미루다가 자기 관리에 정신이 번쩍 들자 뒤늦게 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대개 그 나름의 결백성을 지니고 있다.
세속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득이 될 일도 그 결백성 때문에 단호히 사양하고 물리친다. 단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삶의 규범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홀로 사는 맛은 혼자서 안으로 조용히 새기며 누릴 것이지 세상을 향해서 내세우거나 떠벌릴 일은 못된다. 사람은 각기 인생을 달리하고 있어, 어떤 개인의 삶이 보편적인 삶이 될 수는 없다.
각자 몸담고 살아가는 그 자리에서 삶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면서 그 자신답게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개체의 삶은 어떤 비약을 거쳐 근원적인 전체의 삶에 도달해야 한다. 비약을 거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는 영원한 방랑자로 처지고 만다.
수피즘(회교 신비주의)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강물이 있었다. 이 강물은 깊은 산 속에서 발원하여 험준한 산골짜기를 지나고 폭포를 거쳐 산자락을 돌아서 들녘으로 나온다. 세상의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면서 흘러 다니다가 어느 날 모래와 자갈로 된 사막을 만나게 된다.
사막 너머에는 강물의 종착지인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그 바다에 이를지 강물은 당황하게 된다. 바다로 합류하려면 기필코 그 사막을 건너야만 한다.
강물은 마음을 가다듬고 사막을 향해 힘껏 돌진해 간다.
그러나 사막과 마주치는 순간 강물은 소리없이 모래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강물은 정신이 번쩍 든다. 어떻게 하면 이 사막을 무난히 건널 수 있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이때 사막 한가운데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자신을 증발시켜 바람에 네 몸을 맡겨라. 바람은 사막 저편에서 너를 비로 뿌려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다시 강물이 되어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에도 건너야 할 사막은 여기저기 무수히 널려 있다.
일상적인 타성의 수렁에서 벗어나 존재의 변신인 그 비약을 거치지 않으면 장애물에 걸려 근원에 도달할 수 없다.
사막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는 바로 우리 내심의 소리이기도 하다.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바깥 소리에 팔릴 게 아니라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한 스승은 밖에 있지 않고 내 안에 깃들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가.
- 법정 스님- 오두막 편지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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