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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곰삭한 맛

<아이가 온다>

<아이가 온다>

애는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나지

아빠가 누구건 엄마가 어떻든

어려운 시기건 앞날이 어쨌든

그냥 세상에 첫울음을 질러버리지

어쩌라고, 어쩔거야

내가 태어났다니까

내가 등장했다니까

이런 세상에 너 어떻게 살 거냐고

날 겁주지 말라니까

이거 배우고 저거 잘하고

남을 밟고 싸워 이기라고

날 떠밀지 말라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인생

내가 찾아서 간다니까, 내길

부딪히고 쓰러지고 일어서고

내가 해낸 게 진짜 나라니까

애는 아무 생각 없이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아무 생각 없이 아닌데,

싫은데, 반항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자기만의 길로 튕겨 가버리지

애는 울음이건 침묵이건 재잘대건

아무 생각 없이

미래의 목소리를 질러버리지

아무 생각 없이

세상을 바꿔나가버리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태어나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지

애는 아무 생각 없이 승리하지

-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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