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에서 나온 장미꽃>
그는 말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3년 동안
벙어리 노릇을 하기로 하였다.
그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말을
남발하는가를 지켜보았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한다’하고,
그렇지 않은 것에도
‘그렇다’하고.
제일 한심스러운 일은
가짜를 가짜로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진짜’라고 증언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침묵이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는
명언에 그는 동의하였다.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서
평생을 지낼 순 없는 일이었다.
그는 벙어리 노릇을
청산하면서
한마디 낱말에만은
순결을 지키고자 마음먹었다.
그 한마디 말을
고르고 고른 끝에
그는 ‘사랑’이라는
낱말을 택하였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찌도 사랑이라는 말을
남용하는지
그는 한때
이 말을 다른 낱말로
바꾸었으면 하고
고심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는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저는 사랑이라는 말을
이 세상에서 딱 한번만
사용하겠습니다.
그때 주님,
저에게 제 진실의
표징을 보여주소서.”
그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많은 유혹을 받았다.
한창 젊음이
들끓을 때에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선
결정적으로
이 말을 쓸 뻔하였다.
그러나 용케도
다음을 위하여 견뎌냈다.
마침내 그한테
임종의 순간이 찾아왔다.
그때에 젊음도, 명예도,
권력도, 재력도,
아무 것도 없는
그의 빈 손을
평화롭게 잡아주는
여인이 있었다.
그가 입을 열어
마침내 사랑이라는
말을 했을 때였다.
놀랍게도 그의 혀에서
장미꽃 두 송이가
굴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 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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