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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히브11.1-2.8-19.마르4.35-41)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저는 노트와 만년필을 이용해서 글을 씁니다. 그러다 보니 꽤 많은 노트를 사용하게 되는데, 노트를 쓰면서 가장 기쁠 때와 기분 좋을 때가 있습니다. 언제일까요? 글이 잘 써질 때도 그렇기는 하지만, 가장 기쁠 때는 두꺼운 노트의 마지막 장을 채울 때이고 기분 좋을 때는 새 노트에 첫 글씨를 적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새 노트에 글을 쓰면서, 이번에는 더 잘 쓰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와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과 똑같다면 희망도 없을 것입니다.
강의 나갔을 때, 종종 청중에게 “최근에 뭔가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몇 분이 대답하십니다. 신앙생활을 적극적으로 한다,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 운동을 시작했다,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등등의 답변이 들려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생기가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분들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일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합니다. 새로운 일에 눈이 초롱초롱해지면서 큰 관심을 갖습니다. 월요일 새벽 미사 끝나면 미사 나온 아이들 라면을 끓여주는데, 맛있는 라면보다 더 좋아하는 라면은 새로운 라면입니다. 그만큼 새로움은 어린아이와 가깝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희망을 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새로움을 지향하는 아이에게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예수님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청하는 사람들을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
제자들의 꾸짖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 선포로 너무나 바쁘신데, 어린이들까지 성가시게 나서서 예수님께 축복을 받는 것이 방해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희망’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희망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바를 고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믿고 신뢰하는 것이 나를 이끌게 합니다. 그래서 희망하지 않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능성과 실현성에 대한 감각을 갖춘, 희망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3월의 첫날입니다. 바로 내가 희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오늘의 명언: 우리는 모두 인생의 격차를 줄여주기 위해 서 있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힘든 시간을 이겨내곤 합니다(오프라 윈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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