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 공영방송 중립화 의지 있나
공영방송 운영원리의 근간은 중립성이다. 공영방송이 추구하는 공정성, 불편부당성, 객관성, 다원성, 개방성 등은 ‘특정 입장이나 편에 치우치지 않는 공평한 태도’를 유지할 때, 즉 중립적 입장일 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공영방송이 제도적으로 포획된 정치후견주의의 본질은 당파성이다.
극명한 모순이 발현된 결과는 치명적이다. 정권교체 때마다 표변하는 논조는 기회주의적 국영방송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편향성으로 인해 공영방송의 국민공동체성은 크게 훼손됐고, 내부 구성원들은 내전 같은 갈등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영방송이 독립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독립기구의 존립 근거 역시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이기 때문이다. 경쟁하는 정치사회 세력들이 실존하는 민주국가에서 국가기간방송이 특정 세력에 편향돼 있을 수는 없다.
중립적이어야 할 기구를 특정 세력이 장악하면 누구도 그 독립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독립은커녕 정치 세력들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
정당의 정치후견주의에 편승해 여론통제를 위한 정치선전 수단으로, 자신들만이 공정하다는 오만함으로, 공영방송과 독재국가의 국영방송도 분간 못하는 무지함으로, 자리 하나 해보겠다는 이기심으로, 공영방송을 장악·탈환하려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수신료의 취약한 안정성마저 흔들어 재정적 근간을 벼랑 끝에 세우는 사례까지 나타났다. 공영방송 시스템 일부를 떼어 시장에 매각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탈상업주의를 지향하는 공영방송 근본 가치를 전면 부정하면서까지 반대 세력을 몰아내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물론 공영방송 독립을 구현하겠다는 선의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들 중 여러 사람들이 중립화라는 독립의 길을 결국은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들도 정치후견주의에 포섭돼 진영 싸움의 구도로 공영방송을 더 깊숙이 편입시켰다.
중립적 공영방송에서는 파시즘과 같은 극단주의만 아니라면 다양한 견해와 주장이 균형 있게 제안되고 공정하게 논의될 수 있다. 판단의 근거로 진실보도의 엄중함이 드러나고 품격 있고 합리적인 문화와 규범이 확산될 수 있다. 민주적 공론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공익증진, 민주주의 지원, 보편적 서비스, 교양과 학습기회 제공, 문화예술 증진과 같은 공영방송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사장은 이를 지키기 위해 외압에 맞서는 사람이다. 사장에게 필요한 소신이 있다면 공영방송을 수호하겠다는 굳은 의지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혁에 관한 많은 법안이 제출됐고 치열한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중립화라는 본질을 비켜갔기 때문이다. 핵심은 명료한 중립화 방안을 도출하는 것, 그리고 이를 대통령과 여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실행하는 것이다.
2016년 야당인 민주당에서 발의했고 2017년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사장 선출 ‘특별다수제’를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분명한 중립화 방안이었고 현실화를 기대할 만한 정치 환경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기계적 중립성”을 이유로 사실상 입장을 바꿔 반대했다. 법안은 끝내 폐기됐다. 불과 5년 후 여야가 뒤바뀌자 공영방송 사장 쟁탈전은 되풀이된다.
지난해 민주당이 주도해 발의된 방송3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다. 이 법안은 이사 수를 21명으로 늘렸다. 정당 추천을 5명으로 줄였고 16명을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방송 직능단체들에 배정했다.
국민의힘은 이사 추천 단체들이 친민주당 성향이라며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주관적 정의론으로 상대의 입장을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핵심은 실존하는 여당과 대통령이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개정안들을 포함한 향후의 어떠한 법안도 이 같은 역학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공영방송과 이제는 정치적 톨레랑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의 정치 풍토는 불가분의 관계로 보인다.
정치적 결단이 쉽지 않겠지만 여당과 대통령이 관용과 통합의 자세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공영방송의 중립화는 실현되기 어렵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금언을 되뇌게 된다. 따라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선 후보들은 공영방송 중립화의 의지가 있는가?

한동섭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장·전 한국방송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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