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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자비심으로 인해 보리심을>

                    <자비심으로 인해 보리심을>

세월에 어떤 금이나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관념으로

묵은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나온 한 해는 우리 모두에게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라 삶 자체가 크게 흔들려,

우리 사회 곳곳에서 끔찍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났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그런 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어렵게 돌아가다 보니

맑고 향기롭게 모임에서도

예상 밖의 일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서울 모임에서는

날마다 2백 명에 가까운 노숙자들에게

점심을 나누어주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이 일에는 보문 선원과 그곳 불자들의

헌신적인 자원봉사활동이 밑받침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료급식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집안 살림

꾸려가기에도 빠듯하고 어려운 때에,

거르지 않고 꾸준히 성금을 보내주신

전국 각지의 회원들 한 분, 한 분께도

이 기회에 진심으로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맑고 향기로운 그 마음이 이웃에 나누어지면서

세상은 조금씩 좋아져 가리라 믿습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우리 마음을 나누어 줄 때,

우리들 안에 있는 자비의 씨앗이

한 꺼풀씩 움트게 된다는 도리를 아시는지요.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일찍이

누구에게 선가 입은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 일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의 씨앗이 움트게 된다는 점에

보다 큰 의미가 있습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으로 인해 자비심을 일으키고,

자비심으로 인해 보리심을[깨달음의 지혜] 발하고,

보리심으로 인해 마침내 깨달음을 이룬다.'

그러면서 경전은 이런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넓은 벌판에 서 있는 나무의 뿌리가 수분을 받으면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무성해지듯이

생사광야의 보리수도 그와 같다.

모든 중생(우리 이웃)이 뿌리라면

부처와 보살은 꽃과 열매다.

자비의 물로 중생을 이롭게 하면

지혜의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우리가 어려운 이웃을 자비심으로 돕게 되면

그 공덕으로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기 때문에,

보리심은 근원적으로 이웃에게 딸린 것입니다.

따라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이웃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할 일이 있고,

우리 삶을 보다 값지게 가꾸어나갈 수 있다는

출세간적인 논리입니다.

해가 바뀌면 삶의 양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새해를 맞으려면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삶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변함이 없는 똑같은 되풀이는 무료하고 따분합니다.

새로움은 어디서 오는 것이 아니라

리들 자신이 만들어 냅니다.

새해에 복 받으셔서 맑고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 법정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