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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과 한국교회

한국 천주교회는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국 천주교회는 여성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회가 예수님이 여성을 대하신 것처럼 변화하려면, 눈과 귀부터 열고, 말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가 강조한 여성상은 이미 충분히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이제는 말하기보다 여성의 현실 앞에 눈을 뜨고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감히 두려워 입조차 열지 않는 여성들에게 마이크를 쥐어 주고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시켜 주십시오.

이런 세미나를 자주 열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하여 조사를 하고 문제점을 정리하고 제도와 언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변화를 책임질 사람을 뽑고 힘껏 추진하여 한국 천주교인 모두가 가슴으로 느끼는 변화를 경험시켜 주셔야 합니다. 두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여성 문제를 대하는 주교회의의 자세가 과거와 달리 진심으로 변화했다는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 주십시오.

1984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으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 회의 의안집"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지금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한국 교회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의견과 희망을 모은 역사적 문헌이라고 합니다.

이 의안집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이 담긴 총 12개 의안(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전례, 신심 운동, 지역 사목, 교리 교육, 가정 사목, 특수 사목, 교회 운영, 선교, 사회)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한국 교회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이 의안집이, 영구 보존되고 다양한 연구와 토론의 자료로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 사목 회의는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하느님 백성 전체, 즉 성직자·수도자·평신도가 같이 참여하는 회의라는 데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이 의안들은 우리가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사목 향방 설정에 큰 길잡이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는 추천사도 쓰셨다고 합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 회의 의안집"이 내용 중에서 여성 문제를 다룬 부분을 찾아보았고, "제 3안 평신도 (별정문제) '가톨릭 여성의 위치'"라는 글을 찾았습니다. 이 글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옮겨 보겠습니다.

"15. 교회는 가톨릭 여성단체들이 조직적 사도직을 통해서 가정 공동체의 진정한 이익을 보호 증진시키도록 배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는 물론 사회 안에서도 참다운 사랑과 봉사의 자세를 실천에 옮기도록 배려해야 한다. 교회는 교회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 가운데 여성의 특성에 알맞는 일을 찾아내어 가톨릭 여성인력을 조직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이 땅에 빛을” 밝히는 구원사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배려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여성의 사회참여 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의 지도능력이 인정되어야 하고 그리고 오늘날의 심각한 청소년 교육이나, 젊은 여성교육, 여성운동, 여성의 사회활동, 여성의 공공생활을 의해서 그 지도능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교회는 여성 평신도의 지위를 보다 더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는 여성의 교회 봉사활동이 정신교육과 신앙교육을 통해서 올바르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한 여성의 의식 계발은 바로 여성 자신의 존재와 삶을 실현하는 데 근본적인 의의를 주기 때문이다.

셋째, 여성의 일차적 소명이 인격적인 자아실현이며 이차적인 소명이 여성과 가정, 여성과 직장, 여성과 사도직이라고 본다면 이제 교회는 이와 같은 제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가톨릭 여성 문제 연구소를 만들어 여성 자신이 먼저 그의 소명과 사명을 투철히 인식하고 실천하도록 관대히 배려해야 한다.

넷째,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가톨릭 여성의 지도력이 물질적 정신적 면에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려면 먼저 가톨릭 여성운동과 관련된 여성 지도자들이 적어도 민족 복음화를 위한 가톨릭 사상과 신앙이 무엇인가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여성 평신도에게 신학공부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 권장해야 한다고 본다."

이 글을 접한 저의 소감은

1) 1984년도에도 여성 문제는 별도로 정해야 하는 <별정문제>, 즉 주요 문제에서 벗어난 문제였으며, 삼십여 년이 흐른 2022년에도 여전히 여성 문제는 작을 소(小)자를 붙이는 ‘여성소위원회’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2) 글 후미에 ‘가톨릭 여성 문제 연구소’라는 기구가 나옵니다. 이것이 만들어졌는지요? 운영이 되는지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2018년 미투운동 이후 한국 천주교회에서 만들었다는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 역시도 말뿐이지 실체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요컨대 한국 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손을 댄 여성 관련 기구나 조직은 실제로 발족하여 운영된 사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2018년 미투운동 이후 천주교는 교회 내 성폭력 방지로 ‘교회 내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제 성폭력 피해 접수처’를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이후 이 조직들이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 대체 누가 ‘성폭력 방지 특별위원회’ 위원인지, 위원회는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사제 성폭력 피해 접수처’는 그동안 어떤 접수를 받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공개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고 듣는 사람들은 여성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에 어떤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인터넷에서 검색되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 전화를 해 보니, 출범했던 당시와는 달리 현재는 사실상 일반 여성단체로서 정체성이 강하고, 교회와의 인적 물적 연결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출범했을 당시는 천주교의 일부 지원도 받았지만, 지금은 천주교로부터 지원받는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출범 당시의 정신을 이어 나가려고 ‘천주교성폭력상담소’ 라는 이름과 상담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가톨릭 교단은 교회 내 성폭력 상담을 포함하여, 성희롱, 성차별, 성폭력 구조를 개선하는데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고 싶습니다. 개신교회는 종단마다 성희롱, 성차별, 성폭력 예방 및 대처 매뉴얼을 만들고 교육하고 개선하며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건물을 지으면 당연히 화재대응 시스템을 갖추어야 합니다. 화재대응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며 개선해 나가는 모습을 두고 "화재가 나기를 바라는 것이냐?"고 탓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교회 내 성희롱, 성차별, 성폭력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정과 결과가 투명할 때 문제는 개선됩니다.

1984년부터 책까지 만들어 기록을 남긴 ‘가톨릭 여성 문제 연구소’를 지금이라도 세워야 합니다. 2018년 ‘사제 성폭력 방지 특별 위원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공개 되어야 합니다. ‘사제 성폭력 피해 접수처’는 교회 내부에서 운영할 게 아니라 교회 외부 기관에 맡기고 정기적으로 리포트를 공개하는 구조로 가져가야 합니다. 교회 내 성희롱, 성차별의 언어와 구조가 어떤 것이 있는지 조사하고 변화하기 위한 교육과 매뉴얼이 만들어지고 공개되어야 합니다. 한번 만들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나가야 합니다.

현대 사회의 흐름에 발맞추어 여성 불평등과 성희롱, 성차별, 성폭력에 대해 교회가 단절하는 모습을 투명하게 보여 줄 때, 사람들은 한국 천주교회가 진정으로 변화했다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2. 여성 불평등을 상징하는 ‘유리천장’과 ‘저임금’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2022년 10월 14일 주교회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 글을 보았습니다. 교회 내 여성 문제를 언급하는 문단을 옮겨 봅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성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증진하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활동 지원을 통해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교회의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가정 폭력, 성 착취, 성매매, 낙태 등으로 피해와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위한 실제적인 도움과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한 성·사랑·생명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다."

여성에 관해 언급하는 위 문단을 읽으며, 또 보고서 전체를 정독해 보아도, 한국 천주교회가 그리 변화할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대화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언급은 있지만, ‘교회가 여성을 차별해 왔고, 현대 사회에서 여성을 차별하는 교회의 태도는 선교에 큰 지장이 되고 있다’는 표현이 없습니다. 요컨대 ‘요청’과 ‘제안’과 ‘당위’는 있지만 ‘고백’이 없는 보고서였습니다.

종합 보고서를 작성하신 분들은 여전히 여성 문제에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디 2022년 작성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는 1984년 작성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 회의 의안집'과 다른 운명을 걷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한국교회 종합 의견서와 비교되는 글을 보았습니다. 2022년 10월 27일자 <바티칸뉴스>(VATICAN NEWS)에서 접한 교황청 시노드 보고서입니다. <바티칸뉴스>에서 언급한 교황청 시노드 보고서는 교회의 여성차별 문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2)

“전례에 참석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여성이고 남성은 소수이지만 대부분의 의사 결정과 통치 역할은 남성이 맡고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남성을 교회 회원으로 끌어들이고 여성이 교회 생활의 모든 단계에 더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문서는 계속해서 뉴질랜드의 주교회의 보고서를 인용하는데, 그 보고서에는 "교회 내에서 여성의 평등의 결여는 현대 세계에서 교회의 걸림돌로 여겨진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텍스트는 또한 세계 가톨릭 수도회의 구성원을 대표하는 두 엄브렐라 그룹의 보고서를 인용하며, "의사 결정과 교회 언어의 성차별이 교회에 만연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교회의 삶에서 의미 있는 역할에서 배제되고, 그들의 사역과 봉사에 대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함으로써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종교 여성은 값싼 노동력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고려해야 할 영역 중 문서에는 교회의 통치 구조에서 여성의 역할, 여성 설교 가능성, 여성 부제, 여성 사제 서품 문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저는 ‘고백’을 보았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언급’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여성 문제를 대하는 보고서에서는 바티칸 보고서처럼 아래의 내용을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고백’과 함께 ‘변화하려는 진정성’을 보여 주기를 희망합니다.

① 교회 내 여성 평등의 결여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의 걸림돌이다.

② 교회의 의사 결정과 교회 언어에서 성차별이 만연하다.

③ 종교 여성은 값싼 노동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님 즉위 이래 가톨릭 내 여성의 지위가 달라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여성 부제가 존재했음도 인정했고, 여성 부제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노드 사무국장에 여성이 임명되면서 주교님과 동등하게 안건 투표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고, 바티칸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여성이 임명됐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문제는 한국 천주교회가 이런 교황님의 움직임에 발맞춘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여성 불평등 문제를 상징하는 ‘유리천장’과 ‘저임금’부터 한국 천주교회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2021년 기준, 성평등 수준을 보여 주는 세계경제포럼의 ‘성 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에서 한국은 전 세계 153개국 중 102위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여성가족부는 한국 성별임금격차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상장 법인은 38.1퍼센트, 공공기관은 26.3퍼센트 적으며 성별 근속연수 또한 여성이 31.2퍼센트 짧다고 했습니다.

이천년 전 교회는 당시 잘못된 사회와 전혀 다른 대안 공동체로 출발했습니다. 24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천주교회 역시 당시 잘못된 사회 한복판에서 대안 공동체를 세웠던 선조들의 노력과 순교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교회 내부에 어떤 여성 차별의 언어와 구조가 있는지를 진실하게 성찰하고 고백하면서 교회의 변화는 시작될 것입니다. 당위를 반복하는 메아리가 아니라, 말과 행동이 일치하며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한국 천주교회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때에 여성 불평등과 여성 차별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한국 천주교회는 대안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1) 1995년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가 우리신학연구소와 함께 전국 7개 교구 20개 본당 20살 이상인 1000명의 여성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

2) Christopher White, 'New Vatican synod document mentions women's ordination, LGBTQ relationships/, VITAN NEWS, October 27, 2022.

유형선(아오스딩)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여성분과 위원.

40대 후반 직장인,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딸을 둔 아버지다. 아내와 공저로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2016), "중1 독서습관"(2019), "탈무드 교육의 힘"(2021)을 썼다.

전국 도서관에서 ‘가족 독서’에 관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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