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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12월 20일

                    (이사야7.10-14.루카1.26-38)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나자렛의 마리아처럼 그저 일어서라면 일어서야겠습니다. 떠나라면 떠나야겠습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인데, 대체 왜 그랬는지, 과거에 제가 그랬습니다.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취미가 뒷담화요 특기가 놀려먹기, 돌려까기였습니다.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왜 하필 나만? 왜 꼭 나야여만 하는가?

그런데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참 과묵한 사람이었는데, 가끔 입을 열면 그렇게 믿음직하고 듬직했습니다. 절대 다른 사람들 흉보지 않았습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 참 말을 이쁘게 하더군요.

그를 만나며,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내 모든 속사정을 털어놔도 아무 문제가 없겠구나...그러면서 제 심각한 언어생활을 깊이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그런 사람 한 사람 있다는 것,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이런 면에서 나자렛의 마리아의 언어는 지나치게 말 많은 우리, 때로 천박한 언어로 가까운 이웃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사실 마리아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구세사 안에서 큰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안에 나타난 마리아의 언어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무척이나 과묵하고 진중했던 여인이었음을 반증하는 표시입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다는 어마어마한 대사건 앞에서 두렵고 떨렸겠지요.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도 엄청났을 것입니다. 아직 어린 자신, 한없이 나약하고 부족한 자신 앞에 펼쳐질 하느님 구원의 손길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고민 앞에 근심걱정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진정되고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자 마리아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너무나 엄청난 초대인지라 큰 의구심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을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용감히 여쭙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카 복음 1장 34절)

가브리엘 천사가 단칼에 해결해줍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복음 1장 35절)

그러자 마리아는 지체하지 않고 호의적으로 능동적으로 즉각적인 응답을 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복음 1장 38절)

마리아의 신속하고 즉각적인 순명으로 인해 과분하게도 구세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겠습니다. 나자렛의 마리아처럼 그저 일어서라면 일어서야겠습니다. 떠나라면 떠나야겠습니다. 받아들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습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