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사무엘1.24-28.루카1.46-56)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젊은 청년이 카페에 들어갔다가 구석에 구부정하게 앉아 노트북에 푹 빠져 있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노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키보드를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보다 더 빠른 속도에 감탄하였지요.
‘무엇을 하시나?’하고 노트북 화면을 보니, 요즘 유행하는 최신 게임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더군다나 게임 실력도 수준급이었습니다. 감탄한 청년은 이 노인과 이렇게 대화를 나눴습니다.
“제가 아까부터 어르신을 지켜봤는데 컴퓨터를 정말 잘하시네요.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그거야 하루에 12시간 이상 게임을 한 덕분이죠. 밖에는 거의 나가지 않고 게임만 하면 이렇게 될 수 있어요.”
“굉장하세요. 그 나이에 정정하신데도 기계도 그렇게 잘 다루시다뇨. 실례가 안 된다면 연세를 여쭤봐도 될까요?”
이 노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물여덟인데요?”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여기에는 정곡을 찌르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바로 행동이 결과를 결정한다는 메시지입니다. 자기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자기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행동보다 좋은 결과만을 생각하는 우리가 아닐까요?
성모님께서 엘리사벳 성녀를 만나시고, 성무일도에서 늘 바치고 있는 ‘마리아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이 노래의 한 가운데,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9)라고 고백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모습입니다. 사실 예수님 잉태는 처녀의 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의 무시무시한 간음법에 거부하는 것이 맞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 모든 일을 전능하신 분의 큰일로 받아들이십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게 된 것이고, 더불어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행동을 잘 떠올려 보십시오. 결과만을 바라보는 삶이 아닌, 자기 행동이 옳을 수 있도록 늘 성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입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좋은 세상은 고통 없는 세상이 아니라 고통이 고통을 알아보는 세상이다(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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