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아기 순교자 축일
(요한1서1.5-2.2.마태2.13-18)
헤로데는 베들레헴에 사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중학생 때, 등하교를 같이했던 동네 친구가 있었습니다. 집이 가까워서 학교까지 함께 걸어갔고, 집에 올 때도 같이 걸어왔습니다. 아마 중학생 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날, 함께 걸어오면서 학교의 반 친구 흉을 제가 말했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 공부만 하고, 너무 이기적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말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네가 더 심해.”
이 말에 기분이 좋지 않아 인상을 쓰자, 착한 친구는 “농담이야.”라면서 얼버무렸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저를 떠올리면서 흉을 봤던 친구보다 분명히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를 떠올리며, 당시에는 왜 이렇게 남에 대해 흉을 많이 봤나 싶습니다. 사실 남 험담하는 사람이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다고 하지요. 자신에게 불만이 많고 열등감이 심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흉이 흉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저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주는 대로 받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칭찬은 칭찬을 낳고, 험담은 험담을 낳습니다. 때로는 여기에 이자가 붙어서 돌아오기도 합니다.
적대감을 가지고 하는 부정적인 말과 행동이 아닌,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이 가득 담긴 긍정적인 말과 행동이 우리의 말과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으로부터 이자까지 더해서 더 좋은 것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을 기념합니다. 갓 태어나신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 버린 헤로데 대왕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요? 어린아이를 죽인 것은 자기 권력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서였지요. 하지만 당시 그의 나이는 70세로, 절대 적지 않은 나이였습니다. 실제로 이 악행을 저지르고 얼마 못 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못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끝까지 행복할 수 없었던 헤로데 대왕이 만약 사랑으로 아기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늘 나라에서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끝까지 나의 욕심과 이기심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며 말과 행동에 늘 사랑을 가득 담아야 할 것입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은 나의 현재다. 현재는 나의 전부이고, 모든 것이다(로시 조앤 헬리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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