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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福音 묵상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요한1서2.3-11.루카2.22-35)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

예수님의 일생은 첫 출발점인 탄생에서부터 고통스런 수난과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결같고 지속적인 하향성의 생애였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지극한 자기 낮춤과 겸손의 연속이었습니다.

전혀 그러지 않으셔도 될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극도로 자신을 낮추셔서, 작은 인간들 사이로 육화 강생하신 대사건인 성탄 앞에 그저 감사와 찬미의 기도를 올릴 뿐입니다.

이왕 태어날 것, 저 같았으면 멋진 황제의 장남으로 태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구중궁궐 속 따뜻하고 안락하고 넓은 방에서, 주변 사람들의 큰 환영과 박수를 받으며 태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요즘 저는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어촌에 살면서 외풍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며 살고 있습니다. 강풍이 불고 강추위가 밀려오면 아무리 난방을 해도 효과가 미미합니다. 방에 누우면 외풍까지 느껴져 코가 시릴 정도입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방 한 칸조차 마련하지 못해 외풍 정도가 아니라 찬바람이 숭숭 아무런 여과 없이 들어오는 마굿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가난하고 겸손한 탄생은 다시 또 없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후, 유다 관습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성전으로 모시고 가서, 주님께 봉헌하는 예식에 참여하십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바친 예물을 보십시오. 산비둘기 한 쌍,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였습니다. 참으로 빈약하고 보잘것없는 예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큼지막한 황소나 잘생긴 숫양이 아니라 고작 비둘기였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탄생이요 봉헌 예식이었습니다.

이 땅에 탄생하신 메시아께서 너무 부유하거나 거창한 모습으로 등장하시면 가난한 백성들이 기가 죽을까 봐, 작고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작고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께 그저 고개 숙여 감사드릴 뿐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