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불어 삶(이웃사랑)

- 농부에게 절을 한다 -

- 농부에게 절을 한다 -

거름으로 찌든 때 몸에 배어

벗겨진 밤송이 같이 겉보기에 꺼칠한

절대로, 헐렁헐렁하고 후질근한

소나무 뿌리 같은 손발을 가진

흙 색깔 나이테로 얼룩진 모습으로

땅 딛고 꾸부정하게 서 있는

농부에게 절을 한다

바스러지는 진한 흙냄새 달게 마시며

땀방울로 흙을 적셔

호미 뭉그러지도록 땅 일구고

하늘에서는 별들이 반짝이지만

밤에는 죽은 듯이 별 없이 살아가는

스스로 무지렁이라는

농부에게 절로 숙여 절을 한다

굽어진 등허리로 하늘을 쳐다보며

햇빛 머리에 이고 땅위에 서서

생명의 상처와 싸우며 어우러지고

생명 지켜가며 생명 거두어

모두가 한 식구로 살아가는

넉넉한 빈 몸이기에

농부에게 존경하는 예를 표한다

하늘을 경외하여,

바람의 소리 들어

내일을 미리 알고

낮게 숙여 바람 따라 자연의 비밀

뼛속에 깊이 심어,

아주 어색하게

생명의 냄새 물씬 풍기며

깃발 없이 살아가는

농부에게 큰 절을 올린다

- 유원석 시집< 비로소, 지금으로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