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둘째 미사)
(지혜3.1-9.로마5.17-21.마태11.25-30)
내 죽음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줍시다!
위령의 날을 맞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죽음에 대해서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 저도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죽음이 시시각각으로 제게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떨리기도 하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최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지평을 열어주신 분이 계시는데, 헨리 나웬 신부님이십니다. 신부님께서는 자신이 꿈꾸고 희망했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자신이 꿈꾸고 희망했던 죽음에 대해서 >-헨리 나웬 신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친밀함의 대상으로서의 죽음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는 죽음
세심하게 준비하는 죽음
반가운 친구 같은 죽음
상실이 아니라 성취로서의 죽음
가장 인간다운 행위로서의 죽음
헨리 나웬 신부님께서 가르침을 이어갑니다.
죽는다는 것은
나를 붙잡아주실 존재,
아버지에게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 일생 전체를 아버지께
송두리째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결국
내 손을 아버지 손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죽음이 다가올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향해서 걸어갈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곧 당신이 죽음을 향해서 점프할 때,
저 건너편에는 하느님께서 이미
당신이 도착할 그 자리에
딱 지키고 서 계실 것입니다.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손과 팔을 펼치기만 하십시오.
반드시 그분께서 당신을
꼭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또 믿으십시오.”
헨리 나웬 신부님의 또 다른 한 말씀이 너무나 은혜롭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죽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내 죽음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가장 큰 증거요 사랑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섬광처럼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을 보다 잘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가장 좋은 준비는? 꾸준한 기도와 함께 죽음에 대한 부단한 연구, 죽음에 대한 지속적인 의미 부여 그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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