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드러나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
8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은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구세주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 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다.(마태 2,1-12) ‘동방 박사들의 경배’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1-6), 곧 “너의 빛을 보고 …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라는 예언이 아기 예수님의 강생으로 실현됐다고 선포한다.
별의 인도로 동방 박사 세 사람 방문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이 사건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동방 박사들은 이민족을 대표한다. 이민족들이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은 단지 유다인뿐 아니라 모든 백성의 왕이 되실 분을 찾아 이스라엘로 왔음을 보여준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왔다. 이 별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별, 곧 다윗의 별이다(민수 24,17 참조). 이 다윗의 별이 가리키는 메시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했다는 것은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28항)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에 ‘동방 박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μαγοι’(마고이)는 본래 ‘점성가’ ‘현자’라는 뜻이다. 또 사도행전 13,6.8에서는 ‘마술사’ ‘협잡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 동방 박사들을 전통적으로 세 명으로 묘사한다. 초대 교회 오리게네스(185?~254?) 교부가 “예물이 셋이니 동방 박사도 3명”이라고 주장한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3’은 성경의 의미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수로 시작과 마침을 가리키는 완전 수이다.
교회 전승에 따라 동방 박사의 신분이 ‘왕’들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테르툴리아노(160~223) 교부에서 비롯됐다. 그는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시편 72,11)는 시편 말씀과 연관 지어 동방 박사를 왕들이라고 주장했다.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과 몰약
동방 박사들은 교회 전통에 따라 인생의 세 단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제일 먼저 유럽을 상징하는 나이 든 가스발이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아기 예수에게 황금을 바치고 있다. 그 뒤에는 장년인 아시아의 왕 멜키오르와 아프리카의 청년 발타사르가 유향과 몰약을 들고 경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흑인 청년과 황인 장년, 백인 노인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는 것은 왕 중 왕이신 예수에게 이 세상 모든 대륙의 전 인류가 영원무궁토록 경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 몰약은 ‘왕권’과 ‘그리스도의 신성’,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각각 상징하는 예물이다. 현대 신학의 거장인 칼 라너 신부는 동방 박사의 예물이 구세주 아기 예수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우리의 희생,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 봉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구세주 출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다. 주님 공현은 유다인뿐 아니라 이민족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보여준다. 주님 공현 대축일 말씀 전례 독서에서 알 수 있듯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구세주의 강생으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에 초점
초대 교회에서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로마 제국의 태양신 축제일에 지냈다. 그런데 이 축제일이 서방에서는 12월 25일이었고, 동방에서는 1월 6일이었다. 이에 서방 교회에서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1월 6일로 나눠 지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특별한 전례 예식이 없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성탄 시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 성탄 전례는 참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인간으로 강생하셨음을, 주님 공현은 구세주께서 온 민족에게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셨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성탄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人性)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두 대축일은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 끝나
주님 공현 대축일은 원래 1월 6일이다. 선교지인 한국 교회는 사목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리고 성탄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끝난다. 다만 한국 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때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에 주님 세례 축일로 기념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런 경우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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