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화요일
(히브리2.5-12.마르1.21ㄴ-28)
<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다. >
어렸을 때의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나이 먹으면서 제 모습이 계속 변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갓난아기 때의 제 모습을 보고 지금의 저를 떠올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제 모습을 보고도 지금의 ‘저’임을 알기 힘들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격은 어떨까요? 성격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하긴 인간의 세포는 거의 7년 주기로 완전히 바뀐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포로는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7년 후의 ‘나’ 모두 완벽하게 다른 존재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계속 변합니다. 그래서 제가 잘 안다는 상대방 역시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해 잘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부부간에도 대화가 점점 줄어든다고 합니다. 지레짐작하고,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리를 둡니다.
변화하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할 때 드러나는 증세입니다. 상대방이 변했다면서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를 진짜 사랑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학자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권위로 가르쳤습니다. 율법에 쓰인 한 획 한 획만을 강조하면서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했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자체로 권위 있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율법에 구속된 것이 아닌, 당신의 말을 통해서도 더러운 영이 복종하는 권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권위는 바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신원에 대해 말하는 더러운 영의 말을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 나가라.”(마르 1,25)라고 꾸짖으십니다. 악의 틈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더러운 영에 갇혀 있는 사람의 아들을 잘 아시기에 그 감옥에서 곧바로 풀려날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 안에서만 가능한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권위는 사랑에서만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변화까지도 받아들이는 사랑, 하느님께 모이도록 이끌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사랑의 권위를 우리 역시 갖춰야 합니다. 진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에서 -
게으름뱅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았는가! 노력의 결과로써 오는 어떤 성과의 기쁨 없이는 누구도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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