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4주일·해외 원조 주일 - 진복팔단(眞福八端)
(스바 2,3; 3,12-13.1코린 1,26-31.마태 5,1-12ㄴ)
마태오 복음이 전하는 8가지 행복
예수님과 함께하는 희망의 미래
겸손한 마음으로 자비의 삶 살길
토마스 아 켐피스 ‘산상 설교’. (16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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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미완성의 행복을 넘어, 보다 완성되고 충만한 행복을 추구하며
공생활 기간 동안 펼쳐진 예수님의 다섯 번 설교 가운데 가장 먼저, 가장 깊이 있게, 그리고 가장 길고 장엄하게 펼쳐진 설교가 산상(山上) 설교(마태 5,1-7,29)입니다. 산성 설교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요 진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행복 선언’으로 산상 설교를 시작합니다. 마태오는 행복 선언 메시지를 다른 복음 사가들과는 달리 더 많이, 여덟 가지로 집약하고 있기에, 이를 진복팔단(眞福八端)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 활동의 주 무대였던 갈릴래아 지방은 정치·사회·문화·종교 등 모든 면에서 낙후된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뒤지고 소외된 갈릴래아 민중들을 위해 행복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행복 선언의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갈릴래아 백성들이 비록 지금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목마르며 슬픔에 가득 차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새 하늘 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충만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굶주림과 갈증이 해결될 것이며,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며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행복 선언의 메시지는 현실이 고통스럽고 비참하니 복되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비록 현실이 불행하지만 메시아로 오실 분으로 인해 밝은 미래가 동터올 것이므로 복되다는 희망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희망찬 미래로 인해 복되다는 힘차고 장엄한 선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강조하시는데, 가난한 사람들이란?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연한 객기나 별 도움 안 되는 오기를 내려놓은 사람들입니다. 기진맥진한 사람들, 의기소침한 사람들, 결국 인간만사 부질없음을 깨달은 사람들, 결국 믿을 대상은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 그래서 교만하거나 기고만장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니 가난한 사람들이란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초라하고 부끄러운 지난 삶이지만 언제 가장 행복했던가 돌아봅니다. 아무래도 내가 나답게 살아갈 때가 행복했습니다. 신원에 걸맞게 충만히 살아갈 때가 행복했습니다. 내 인생이 영적, 육적으로 활짝 꽃피어날 때가 행복했습니다.
많은 순간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 여기며 착각하며 살아오기도 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세속적 행복은 반쪽짜리 행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쪽짜리 미완성의 행복을 넘어, 보다 완성되고 충만한 행복을 추구해야 마땅합니다.
그 행복은 주님 안에 머묾으로 인한 행복입니다. 주님의 뜻에 온전히 승복함으로 인해 얻는 행복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충만히 현존하시고 활동하심으로 인한 행복입니다.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큰 의미가 될 때 참으로 행복합니다. 나로 인해 그 누군가가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견뎌낼 힘을 얻게 될 때 행복합니다.
자세를 낮추면 행복이 찾아옵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니 감사할 일들, 행복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 그 하느님께서 과분하게도 ‘오늘 하루’라는 은총의 선물을 지속적으로 주고 계시다는 것, 죄인임에도, 나약함에도, 불충실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비록 티격태격하지만 홀로 고독에 밥 말아 먹으며 외롭게 살아가지 않고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자세를 낮추니 사방이 행복거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밑으로 내려서니 모든 것이 감사거리들입니다. 손에 쥔 것을 놓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나도 과분한 은총 속에 살아가고 있군요. 그렇다면 얼굴을 활짝 펴야 되겠습니다.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그렇게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왜 그리 좀생이, 좁쌀영감처럼 살아왔는지 후회막심입니다. 왜 별것도 아닌 것들에 그리 목숨을 걸었는지 부끄럽습니다. 한때 인생의 전부라고 여겼던 대상들, 그래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 움켜쥐려고 발버둥쳤던 대상들이 사실은 물거품이요, 뜬구름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보폭은 짧은 반면 하느님의 보폭은 깁니다. 인간의 호흡은 촉박하지만 하느님의 호흡은 여유롭습니다. 앞으로는 좀 더 큰 걸음을 걸어야겠습니다. 좀 더 많은 여유와 너그러움을 나 자신과 이웃들, 그리고 하느님께 보여드려야겠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때 가난한 사람들, 굶주리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처지의 사람들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련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가난하고 굶주리며 우는 사람들에게 직접 위로의 메시지를 건네시면서 격려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걸어온 역사를 통해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하느님께 희망을 걸 때, 하느님께서 어떻게 그들의 편이 되시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가난하고 굶주리며 우는 사람들, 비참한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시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십니다.
부유한 사람들, 그들이 쌓아올린 부 때문에 맨날 행복해할 것 같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언젠가 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많은 부자들이 자신 삶의 기반을 하느님에게서가 아니라 재물에 두고 있습니다. 그 기반이 영원할 것 같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허물어집니다.
혹시라도 오늘 가난 때문에 너무 힘겹습니까? 지금 굶주리고 계십니까? 홀로 돌아서서 속울음을 울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너무 슬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조만간 당신 자비의 손을 펼치시며 가까이 다가오실 것입니다. 항상 함께 해주실 것이며 든든한 산성이요 성채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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