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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며 목 축일 샘-法頂

< 흐르는 물처럼 새롭게 >

< 흐르는 물처럼 새롭게 >

…우리 옛 시조에 이런 노래가 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이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푸른 산도 자연이고 흐르는 물도 자연이다.

산도 자연이고 물도 자연,

이 산과 물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또한 자연 그것이다.

이런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란 몸이니

늙기도 자연에 맡기리라는 노래다.

자연을 읊은 수많은 시조 중에서도

함축미가 뛰어난 노래다.

요즘처럼 자연과 그 질서를 배반하고

반자연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시퍼런 법문이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되찾으려면

이와 같은 자연의 순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산이 깎이어 허물어지고 숲이 사라지고

강물이 말라붙고 들짐승과 새들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 사람만 달랑 남아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자연이 소멸된 황량한 공간에서

컴퓨터와 TV와 가전제품과 자동차와 휴대전화와

오락기구만을 가지고

사람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푸른 생명체는 없고

무표정한 도구만이 들어선 환경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늙고

제 명대로 살다가 익은 열매가 가지에서 떨어지듯이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

5백 년 전 이 땅에서 살다 가신

옛 어른의 노래를 되새기는 뜻이 여기에 있다.

이 시조는 조선조 현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하서(河西) 김인후가 지은 것.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송시열의 작품이라고 했지만

‘하서집’에「자연가(自然歌)」라는 한시가

실려 있는 걸 보아도 김인후가 읊은 노래임이 분명하다.

靑山自然自然 綠水自然自然

山自然水自然 山水間我亦自然

- 법정 스님